[공간] 은평한옥마을 - 백세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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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형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

글 박경철 / 사진 강민정


6자 (1m 80cm정도) 남짓 높이의 작은 대문은 머리를 숙이고 집을 드나들게 만들었다. 판장문으로 만들어진 대문 지붕에는 이끼 자국 많은 오래된 기와가 벽에 걸어둔 족자처럼 작은 팔작지붕을 돋움어 놓았다. 살색 소나무 빛깔 나무로 만들어진 판장문은 두 짝의 문을 열어야 사람이 지날 수 있을 법한 작은 문 이지만 백세청풍 가옥의 관문이다.

대문지붕 높게 용마루를 만들고 양쪽 망와(지붕 맨 위 끝머리에 있는 기와) 사이 수키와를 올려 가볍지 않은 듯 그 용모를 나타내고, 오래 바랜 기와의 색감으로 집의 기품을 대문 밖 한 길에 알리고 있다.




암기와 사이에 올린 숫기와 마구리는 막새기와를 놓지 않고 백색 와구토(수키와 내림의 마지막 백색으로 마감된 부분)로 마감했다. 빛바랜 검정색 기와의 끝자락은 도도한 선비 백색도포 마냥 내리 보는 모습이 과하지 않고 가볍지 않게 집의 입구를 장식했다. 또 용마루 양쪽 망와의 문양 거미 사이에 수키와를 겹쌓아 놓아, 많은 자손과 집안의 번영을 기원하는 집주인의 염원을 담았다.

용마루의 곡을 지은 현수곡선은 넓은 쟁반으로 품어 안 듯 북한산 봉우리를 담아 녹림의 바위산을 품고 있다. 안채 물받이 봉황은 북한산을 담은 대문지붕을 향해 날고 있으며 옆채 지붕 거미 문양도 대문을 바라보며 담소를 소통하고 있다. 또 지붕 아래 네 모퉁이는 양머리가 그 위태를 받치며 대문의 위용과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풍판에 만들어진 양두의 원형곡은 나무와 원형의 곡선을 소담하고 기품 있게 그 조화를 잘 담아내고 있다.

외부 길가에서 대문을 향한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구배는 대문 지붕아래 높이로 시작해 주차장 입구의 담장의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은 담으로 주차장 출입문과 맞닿아 있다.

담장은 아스팔트가 깔린 한길에서 한 턱 넘어 장대석을 밑에 두고 사고석을 구배차이 만큼 빗대어 왼쪽과 오른쪽에 세 단으로 쌓았으며, 그 위 조적을 놓고 담장기와로 마감했다.

좌우 사고석의 아래위 빗대 쌓은 모습은 구배로 인해 좌우 높이가 다른 담장의 시각적 균형을 맞춰주고 색대비의 밝은 장대석의 낮은 부분이 검정 전돌의 무게감을 받아냄으로 벽면 중앙에 장식된 호랑이를 기준으로 담장안쪽 누의 상문에 맞춰 좌우의 균형을 잘 맞춰 주고 있다.

담장 중간에는 해학적인 호랑이가 등 위에 앉은 까치를 바라보며 집을 지키고 있다. 광화문 입구 좌·우에 자리한 해태가 부릅뜬 눈으로 경복궁의 위엄을 상징하고 궁궐 금천교에서 벽사의 의무를 다하는 영물의 모습처럼, 담의 가운데에 자리한 영물은 집의 출입을 지켜보며 수호 자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까치문양은 반가운 손님을 알리고 복을 물어오기 때문에 범의 등 위에서 멀리 오는 액운과 행운을 거르는 영물의 존재로 호랑이와 함께 집안의 벽사 역할과 복을 기원하고 있다.


아스팔트 길가의 매끄러운 경계석에서 대문 문지방과 거리는 1m남짓 하지만 경계석을 기단석 삼아 대문의 문지방을 석재로 마감하고 그 사이 징검다리처럼 디딤돌을 하나 더 놓았다. 마치 외부의 경계석이 담장석이 되고 문지방석과 도로의 경계석 사이에 있는 하나의 디딤돌은 마당의 박석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를 넘어 돌로 만든 문지방은 기단역할을 함으로써 그 짧은 1m의 거리에서는 집 전체를 기단에 올린 의미와 의도를 갖고 있다.

현실적 구조에서 도로와 집의 간극은 과거 한옥이 갖는 형태의 수평적 거리감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이다. 이런 현실의 구조 안에서 한옥이 갖는 의미를 활용해 집으로 진입하는 그 짧은 공간속에 이야기를 숨겨 냄으로써 의미적 수평가옥의 한옥이 현대의 이층한옥으로 일상의 삶으로 공존 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바라본 대문 디딤돌과 그 넘어 박석의 마당 풍경 그리고 쪽마루 밑에 쌓아놓은 장작나무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상상을 만든다. 비록 장작으로 불을 지피지도, 호랑이가 집 주위 경비를 서지도 않지만 궁궐 지붕의 내림마루에서 궁궐 안을 바라보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등의 잡상처럼 벽사의 기원을 갖는다. 또 그 벽사의 기원과 바람은 시간과 함께 집의 역사에 묻혀 그 집과 가족을 지켜 내는 모멘트가 되기도,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