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27] 술로 인간은 행복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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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암 모견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ㆍ동물도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술을 마시면 개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동물도 술을 마실까요? 네, 동물도 술을 마십니다. 보통은 야생에서 자연 발효된 과일, 사탕수수 등을 통해 알코올 성분을 섭취하게 되며 종에 따라 알코올 분해 능력과 중독 여부에 차이는 있지만 곤충, 조류, 포유류, 영장류 등 술을 마시는 개체는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원숭이 종의 85%는 술을 즐겨 마시며 특정 개체의 5% 정도는 알코올 중독 증세가 관찰되기도 합니다. 지능이 높을수록 알코올을 반복해서 즐기기 때문입니다. 높은 지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범고래는 어떨까요? '술고래'라는 말도 흔하게 사용합니다만, 사실 수중에서는 자연발효된 알코올을 접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범고래는 알코올 대신 살아있는 복어를 의도적으로 깨물어 술 대신 독을 즐긴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야생 코끼리는 술을 잘 먹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 7도의 술을 10리터에서 최고 30리터까지 마십니다. 1985년 인도 벵골에서는 코끼리가 술 제조공장을 습격하여 다량의 밀주를 마시고 마을에서 난동을 피워 인명피해를 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조류의 경우 술을 마시고 음주 비행을 하다 추락하는 사례가 목격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두더지는 알코올 분해 능력이 뛰어나 보드카 1병 정도를 섭취하고도 다음 날이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술을 즐기는 데에 있어서는 종의 구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3년 만에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현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빠른 속도로 풀어지면서 거리의 활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도시의 골목은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히고 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통해 늘 반성하지만, 북적이는 밤거리는 보고 있자면 음주로 인해 얻는 즐거움과 행복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낍니다.


월간한옥 33호의 주제는 '술과 향유'입니다.


《고려 도자 청자시명포류문주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ㆍ술과 콘텐츠, 술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장면들  


영화 미생의 오과장을 맡은 박성민 배우는 사실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실은 누군가에겐 배신으로까지 다가옵니다. 먹방이 식욕을 돋우는 것처럼, 맛있게 술을 마시는 장면을 술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병헌 배우가 영화 내부자들에서 소주 없이 라면만 먹었다면, 뜨거운 라면을 뱉고 소주로 입을 헹구는 명장면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며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명장면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도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홍상수 영화에 소주가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어색할 것 같습니다.


술이 장면을 완성시키는 것은 비단 한국 영화뿐만 아닙니다. 영화 '콘스탄틴'에서 주인공 존 콘스탄틴은 아일라섬에서 생산되는 위스키인 아드벡Ardbeg을 즐겨 마십니다. '라라랜드'에서 두 주인공은 어두운 바 안에서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는 모엣 샹동 임페리얼Moet Chandon Imperial을, 킹스맨에서는 버번 위스키인 올드 포레스터Old Forester를 마십니다. 모두 영화와 잘 어울리는 술이죠.


소설 속에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친숙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품 속에서 술 마시는 장면을 자주 등장시킵니다. 실제로 작가 본인도 술을 즐기며 아일라섬의 증류소를 방문한 위스키 관련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키와 술에 관해서 쓴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조승원, 싱긋, 2018)’라는 책에는 하루키의 여러 작품 속에 등장한 술에 대해 담겨있습니다. 하루키 소설에는 패키지에 별 문양이 들어간 하이네캔Heineken과 삿포로Sapporo맥주가 자주 등장하며 대표적인 ‘상실의 시대'에서는 실제 도쿄 신주쿠에 존재하는 칵테일 바 ‘DUG’에서 미도리와 와타나베가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현실과 소설을 교차시킨 부분에서 느껴지는 재미 또한 '술'을 매개로 합니다.


《후원유원》 이명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ㆍ술과 음악, 향유  


술과 음악이야말로 뗄 수 없는 사이로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랜 시간 곁들여 온 문화 콘텐츠입니다. 노동을 할 때도 혼례를 할 때도 차례를 지낼 때도 술과 음악은 함께했습니다.


요즘은 LP를 많이 즐겨 듣는다고 합니다.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문화 황금기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명작'으로 향유되고 있는 뮤지션 쳇 베이커, 밥 딜런, 리암 갤러거, 비틀즈도 유명한 애주가이며, 유명한 바는 으레 유명한 스피커와 훌륭한 선곡이 뒤따릅니다. 밴드 버스커버스커는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막걸리나'로 단숨에 우승 후보로 평가받게 됐으며 ‘취중 진담’은 많은 이들의 사랑 고백에 쓰였습니다. 그리고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은 노래방 대표 뮤직비디오입니다. 좋은 분위기에 방점을 찍는 것은 바야흐로 술과 음악입니다.


이처럼 술이 아니면 명장면이 될 수 없는, 그만큼 잘 표현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순간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 사람, 장소, 사건에 따라 다른 술을 골라 마셔보면 더 짙게 추억되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휴일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술을 즐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