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42] 21세기, 전통의 새로운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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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통의 현대화, 키워드는 '이어짐'과 '변화'  

ⓒ월간한옥


최근 한국의 전통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K힙(Hip)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옥, 한복, 공예 등 전통적인 요소를 차용하는 것이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전통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올바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유행의 순풍을 타고 한국의 전통은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전통은 무엇이고 시대라는 바다에서 잘 나아가고 있는 걸까요.


전통은 전대에서 후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공간적, 시간적 특성을 가진 것입니다. 문화권, 국가, 지역 내에서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것'입니다. 기록이나 자료, 물건 등의 고정된 형태로 보존되는 전통이 있는 반면 융합하고 변화하며 쓰임의 형태로 보존되는 전통이 있습니다. 후자를 '전통의 현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짐'과 '변화'의 공존입니다.


예를 들어 장독대 문화는 주거 형태가 변하며 앞뜰에서 베란다로 옮겨졌고 옹기는 김치냉장고로 대체되었습니다. 연중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젖산을 발효시켜 먹는 행위가 이어지고 그 형태는 문명의 발전에 맞게 변화한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대화의 양상도 달라집니다. 21세기의 전통은 어떨까요. 2022년 공예트렌드 페어의 주제는 '공예의 질문 현실의 대답'이었습니다. 현시대 공예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었습니다. 본래 공예품이란 실용성과 미감이 공존하는 생활용품이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전통 공예품이 가진 실용성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용성보다는 미감에 집중하는 것은 이제 공예의 한 갈래가 된 것이 현실입니다. 전통 한옥 또한 실제로 사용되기보다는 문화재로서 보존하고 경험하는 대상이 되었고,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소수의 상업시설이 주가 되며 실제 주택으로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통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현시대의 전통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1993년 농구 관련 뉴스 기사 ⓒ조선일보


전통의 습속, '이어짐'의 단위는 '세대'입니다. 세대란 사전적으로 '공통의 의식'을 가진 사람을 뜻하며 물리적으로는 30년 정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공통의 의식'이 존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시간의 범위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30년 전의 것을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슬램덩크 신드롬'이라고 불리며 흥행 중입니다. 누적관객수는 328만 명으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를 갈아치우며 1위로 올라섰고 원작 만화 단행본은 현재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베스트샐러 10위 안에 관련 도서가 6권, 부동의 1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원작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한 농구만화입니다. 1998년부터는 SBS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방영하였으며 한국의 90년대 농구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1993년 조선일보에서는 고교생 선정 인기만화 1위로 꼽히기도 했으며 실제로 이 무렵 드라마 마지막승부, 농구대잔치, NBA와의 시너지로 KBL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토에이 컴퍼니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한 세대를 거쳐 다시 한번 신드롬이 되었습니다. 그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3D 기술과 로토스코핑, 모션 캡쳐의 사용으로 스포츠 만화로써 과거에는 표현하지 못했던 속도감과 입체적인 연출을 사용했으며 과거 원작 시리즈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이야기와 원작을 알면 더 재미있지만 몰라도 볼 수 있는 단독 작품으로, 일부는 이어지고 일부는 변화하였으며 또 일부는 새로웠습니다. 1990년대와 2023년의 공존입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슬램덩크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어받은 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민적인 유행어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MZ세대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세대를 칭하는 용어의 변화를 보면 X세대는 1965~1980년(15년), Y세대는 1981~1996(15년) 그리고 Z세대에서는 1996~2012(6년)으로 기간이 크게 줄어듭니다. 2000년도 무렵을 기점으로 세대의 변화가 빨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며 공감대는 작아지고 사회가 정의하는 세대의 폭도 더 좁아질 것입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통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더 가까운 시대로 옮겨가야 합니다. 현세대에 '아파트 키드'라는 공감대가 있는 것처럼, 어쩌면 이제 우리의 전통은 한옥에서 나아가 양옥과 조적식 벽돌집뿐만 아니라 아파트까지 아우르는 것으로 정의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공예란 무엇일까  

ㆍ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시각적 만족과 기능의 물건  

송재석 <무제> ⓒ월간한옥


사물에 대한 기억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인류 전체를 놓고 관찰했을 때 이것은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진화와 발달에 따라 변화가 있었고 미국의 예술이론가인 글렌 아담슨(Glenn Adamson)은 이것을 ‘물질에 대한 지능(material intelligence)’이라고 지칭한다. 개인적 취향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형성된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사물에 대한 기억은 곧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지각하는 능력이 발달되며 미에 대한 경험과 지식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지은 <유리 막사발> ⓒ월간한옥


고대에는 물질에 대한 지능이 정신과 밀접한 연결로 주의, 경고, 지각, 인지 능력을 향상시켜주었으며 도구 등을 만들어 일상생활의 지혜와 편의에 기여했다. 문명이 발달되면서 사람은 기계에 의존하게 되었고 촉각적 지능은 다른 차원으로 변하면서 육체적 노동 또한 감소되었다. 


20세기에는 대량생산이라는 개념이 사회전반에 심어지면서 물질에 대한 의식도 달라졌다. 사물 하나를 통해서 만족감을 얻기보다는 다양한 소재를 접하는 것을 선호하며 일회성을 띄는 호기심은 물질에 대한 지나친 낭비 문화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선대가 대대로 물려주는 문화는 지금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정다혜 <말총 빗살무늬> ⓒ월간한옥


21세기의 사회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전 시대의 아이들처럼 육체를 사용해서 특정 재료로 무엇을 만들고 하기보다는 컴퓨터상에서 장착 된 프로그램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다. 정보의 홍수, 경계 없는 소통의 네트워크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열려 있다. 물질에 대한 그들의 의식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르다.


공예에 있어서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기능은 쓰임이기 전에 시각적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심미적 표현에서 사물이 보여주는 재료의 특성, 시각적인 즐거움 등의 만족도가 중요시 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은 필요에 의해서 사물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 공간적 연출, 인테리어 장식 등을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스마트 폰, 전자 패드 등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시각이 발달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비주얼(visua)l적 요소가 중요해졌다.


카렌 페리(Karen Perry) <Granalla Doble 그라날라 두블레(이중 작은 용기> ⓒ월간한옥


공예의 기본적 기능은 의식주를 기반으로 우리의 일상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만들어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큰 그림에서는 현대공예는 시각, 상징 그리고 기능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쓰임도 좋은 공예품이 있다면 반대로 기능은 없어도 재료적 표현, 조형적 균형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허상욱 <분청> ⓒ월간한옥


이 시대의 공예의 접근과 영역은 다양하다. 물질에 대한 지능은 현재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있으며 공예의 영역은 전통을 기반으로 쓰임과 시각적 효과 그리고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되면 될수록 당연히 가치관이 과거와는 동일할 수 없지만 촉각적인 만족감을 다시 추구하며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즉 가상현실 세계의 고립으로 아날로그 시대의 따뜻함과 손맛을 찾아 헤맬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시대에 맞게 변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