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34] 가을과 겨울 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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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사의재 일원 ⓒHanok_magazine ⓒAPC


ㆍ22년 가을을 기억하며  


서른 네 번째 뉴스레터를 열기에 앞서 서울의 가운데에서 발생한 참사에 깊은 조의와 애도를 표합니다. 더불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노동 현장에서의 사고에도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당연히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한옥건축박람회 진행으로 먼 강진에서 여러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만 거리감이 무색할 정도로 맑은 하늘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편집부는 강진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독자분들께 월간한옥 33호 발송을 마쳤습니다. 이번 월간한옥 33호를 쥐고 펼쳐봐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눈쌓인 논산 명재고택 전경 ⓒHanok_magazine ⓒAPC


ㆍ겨울, 추위와 어둠의 계절  


겨울은 그 계절이 가진 특징으로 비교적 암울하게 묘사되는 때가 많습니다. 물론 겨울만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하얀 눈이라든지, 크리스마스의 풍경, 겨울 햇빛 특유의 색채, 이불 속에서 까먹는 귤 등이 그렇죠.


하지만 추위는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실제로 실내 생활과 일조량이 줄어들어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의 분비가 감소하여 상대적으로 우울감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일조량이 적고 해가 짧아 어둠은 길고 날씨는 추운 북유럽 국가에서는 실제로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많고 그에 따른 진단과 처방을 국가적으로 중요한, 필수적인 의료 기반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유럽의 주택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창을 크게 열어 둡니다. 추위만큼이나 어둠이 힘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해를 많이 쬐기 위함이죠.


그리고 지금이야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겨울에도 먹을 걱정은 줄어들었지만, 농경 기반 사회였던 과거에는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부를 정도로 먹거리가 부족하여 굶주림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전기 조명이 없던 시기에는 긴 어둠으로 그 우울감도 더 심했겠지요. 과거보다야 덜해졌지만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겨울이 반갑기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계절일 겁니다.


경복궁 ⓒ월간한옥


ㆍ조선의 소방관, 호스가 아닌 도끼를 들다  


그리고 과거에는 보릿고개뿐만 아니라 또 걱정해야 할 것이 있었는데요. 겨울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합니다. 나무는 가지만 남고 잎은 떨어져 낙엽이 되어 뒹굽니다. 이런 이유로 건조한 겨울은 평년보다 산불 위험이 배로 늘어나죠. 지금이야 산불 걱정이 크지만 목재로 지은 한옥과 마른 지푸라기를 얹은 초가집이 많았던 과거에는 전기 조명도 없어 불로 초를 밝히고 아궁이를 지폈기 때문에 그 위험이 더 컸습니다. 실제로 화재로 인해 많은 한옥 건축물이 소실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현대의 소방서처럼 조선시대에도 화재를 진압하는 정부 조직이 있었습니다. 세종 8년 (1426년) 2월 15일 한양의 어느 초가 아궁이에서 튄 작은 불똥이 대화재로 번져 민가 약 2,100호가 불에 타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재발 방지를 위해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했는데요. 지금과 다르게 금화도감은 군 기관으로, 불을 끄는 군인인 금화군이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조 시절 금화군이 확대되어 멸화군(滅火軍)이 됩니다. 지금도 간혹 뉴스 기사에서 소방수, 소방관을 멸화군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유래된 것이죠. 멸화군은 종루에 올라 한양을 내려다보며 불을 감시하거나 특히 바람이 강한 날에는 야간순찰을 돌며 화재 예방 활동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강한 압력으로 물을 뿜는 소방호수와 소화기로 불을 끄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멸화군은 약 50명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물을 긷는 여성 노비인 급수비자(汲水婢子)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불이 나면 급수비자가 길어온 물을 붓거나 상황이 심각한 경우에는 아예 집을 철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멸화군의 소방 장비에는 도끼와 동아줄, 쇠갈고리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종 5년 (1453년), 역시 겨울이었던 1월 7일 밤 세자가 머무는 동궁에 불이 나 승화당을 허물어 강녕전으로 번지는 걸 막았습니다. 종묘사직을 지켜낸 셈이죠.


창덕궁 금천교 해태 일러스트, 박경철,『채색화첩 창덕궁 그리며 걷는 궁궐 컬러링북』, APC(2022)


ㆍ해태와 거북이  


창덕궁 금천교를 비롯해 궁과 사찰 등에는 해태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서울과 경기 소방에서도 해태를 심볼로 사용하고 있죠.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며 옳고 그름을 알아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 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라고 하는 상상의 동물로 생김새는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에 뿔이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근엄하고 무시무시한 형태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둥글둥글한 형태를 하고 있어 귀여운 이미지가 강합니다.


해태는 법과 정의를 수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재를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궁궐과 사찰에 해태상이 많이 놓여 있는 것이죠. 한옥에 들어가는 조형 장식인 장엄(莊嚴)에도 종과 함께 물고기 장식이 달려있는데 이 또한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장식입니다. 그 외에도 사방신 중의 하나인, 거북이의 형상을 한, 현무도 물을 상징하는 신으로 불의 위협을 막아주는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에 남아있는 한옥 건축물 역시 여전히 화재에 취약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산중에 있는 사찰은 산불의 위험과 함께 놓여 있습니다. 지난 낙산사 화재가 그랬던 것처럼 현대적인 기술과 장비에도 번지는 산불을 막기란 쉽지 않죠.


매년 한파를 예상하지만 늘 그 예상을 뛰어넘는 추위를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간은 환경 문제로 인한 이상 기후에 대한 뉴스도 많이 보입니다. 여름은 점점 더 더워지고 겨울은 점점 더 추워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끝나지 않은 코로나 재확산 우려와 유럽발 전쟁부터 이어지고 있는 불안한 국제 정세,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까지 여느 때보다 더 추운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이지만 계절을 피할 수는 없고, 겨울만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모두 큰 사고 없이 이번 겨울 또한 무탈하게 지나가길 바랍니다.

<화원의 예술기행> 전시 포스터


ㆍ서울의 풍경을 손으로 그려 전시합니다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여름의 여운을 좀 더 느껴보시길 바라며 헤릿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화원의 예술기행>전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전통물감으로 그린 서울의 자연, 건물, 한옥을 담은 전시<화원의 예술기행> 전시가 월간한옥 주최로 을지로 헤릿 갤러리에서 11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진행됩니다. <화원의 예술기행>은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시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일환으로 전통물감을 활용한 도시 풍경 드로잉 체험과 함께 건축가, 천연물감 장인, 단청장인의 전문 강의 등으로 구성한 전통 기반의 예술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화원의 예술기행>은 기존에 민화 물감으로만 쓰이던 전통물감 봉채(천연염료를 활용한 전통물감)를 활용하여 현대적인 예술 교육 콘텐츠로 개발, 예술 교육의 다양성 및 다변화 증진을 목표로 기획되었습니다. 또한 건축가와 함께 창덕궁 등 종로구 내 궁궐 및 전통건축물을 직접 답사하고 스케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강의로 구성됐습니다. 프로젝트 마지막에는 강의 후에도봉채를 활용한 스케치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수강생들이 직접 그린 작품을 전시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