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28] 33호 '술과 향유' 미리보기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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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계첩》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안다는 것에 대해



인간 욕구에 관해서 가장 대중적인 이론인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따르면 '생리적 욕구'는 가장 기초적인 욕구로 1단계에 해당하며 ‘인지적 욕구’와 ‘심미적 욕구’는 가장 상위단계의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에 뒤따르는 5, 6단계에 위치한 높은 수준의 욕구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아는 것을 통해 즐거움과 재미를 느낍니다. 


몇 해 전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단연 식사 시간입니다. 맛있게 차려진 한 상의 식사를 앞에 두고 동시대에 유명한 음악가, 과학자, 건축가, 소설가, 맛 칼럼니스트, 전 장관 등이 모여 음식 하나, 식재료 하나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알쓸신잡(알고보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 ‘잡학’에 대한 즐거움으로 한 시간을 이끌어 가는 예능프로입니다. 특정 주제로 묶을 수 없었던 여러 지식이 자유롭게 가지를 뻗어 예상하지 못했던 곳까지 도달합니다. 음식에서 시작해서 건축과 과학, 역사까지 아우릅니다. 알쓸신잡에서 보여지는 식사는 단순히 음식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으며, 잡학이 채워지기 전까진 조금 심심해 보이는 미완의 식탁입니다.


요즘 식당의 메뉴판은 읽을거리가 늘었다고 합니다. 식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설명이 빼곡합니다. 직접 만든 음식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죠. 이제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히 음식뿐만아니라 접시에 올려진 하나의 콘텐츠를 먹는 것이 되었습니다.


월간한옥 33호 ‘술과향유’에서는 한국의 술에 대한 지적 허기를 채워줄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월간한옥 33호, 술과 향유에서는







  

< 안동소주 >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라면 단연 막걸리와 증류식 소주를 꼽습니다. 지금에야 소주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희석식 소주를 칭하며 대중적인 술로 소비되고 있습니다만 본래 소주는 단식증류를 통해 원재료의 맛과 향을 응축한 것입니다.

60~70년대에 원재료인 '쌀'이 많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판매에 제한이 생기며 많은 증류식 소주가 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안동 소주'는 대표적인 전통 소주로 지역 내에서도 다양성을 유지하며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양한 도수의 소주를 선보이며 과거와 현재를 유연하게 잇고 있는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를 만났습니다.





< 레스토랑 에빗Evett 조셉 리저우드 셰프 인터뷰 >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찰과 탐구의 끝에는 자기 자신이 있는 것처럼,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에 대해 되려 정의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타인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자기객관화에 있어 더욱 유의미 할 때도 있죠.

레스토랑 에빗은 발효, 계절 식재료를 비롯해 한국적인 조리법을 연구하며 왠지 모를 오묘한 아름다움을 가진 음식을 선보입니다. 외국인이 담아내는 한국적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덕산양조장 >


막걸리는 본래 가양주로 집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만들고 즐겼던, 가장 가깝고 친근한 술입니다. 물론 여러 이유로 그 맥이 끊기며 가양주로서의 의미가 소실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막걸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막걸리는 전통부터 공산품, 소규모 양조부터 수제까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충청북도 진천에 위치한 덕산양조장은 일제강점기 건축물로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30년대 지어져 90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벽 안에 왕겨를 넣어 발효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여전히 진천막걸리의 생산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막걸리의 살아있는 현장을 담았습니다.



< 청암정 >


청암정은 봉화읍 닭실마을(달실마을)에 위치한 충재 권벌의 유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정자는 경치가 좋은 계곡과 계류, 강이나 해안에 자리합니다. 하지만 청암정은 평야 지대에 위치하여 다른 정자와 달리 풍광이 뛰어난 장소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청암정은 영남 최고의 정자로 손꼽힙니다.

그 이유는 바로 거북 모양의 *너락바위와 자연암반에 걸쳐진 돌다리의 모습 그리고 청암정을 둘러싼 자연이 만들어내는 조화에 있습니다.

*너럭바위: 넓고 평평한 바위

월간한옥 33호에서는 청암정의 역사적 가치와 조형물의 배치, 구성적 특성을 살펴봅니다.





벼타작,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벼타작,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20세기 대한민국 쌀



1.프랑스산 밀가루와 쌀밥


몇 해 전에 소위 하드계열 빵이라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하드계열 빵이란 대표적으로 바게트가 있으며

외에도 치아바타, 캄파뉴 같은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단단한 편인 빵입니다.


하드계열빵이 유행하면서 본토에서 만드는 그대로, 그 재료를 이용해서 현지의 맛을 구현하는 것이

붐처럼 일었습니다. 많은 빵집들이 프랑스산 밀가루의 품번까지 표기하며 빵을 팔 때,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쌀에 대한 정보는 ‘국내산’이 전부였습니다. 쌀이 주식으로서 주도권이 많이

넘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쌀이라면 좀 서운할 것 같긴 합니다.

쌀 품종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는가요?


2.철원 오대쌀과 오대산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 중에 유명한 것이 몇 가지 있겠지만 ‘철원 오대쌀’은 빠지지 않을 겁니다.

‘철원 오대쌀’이 오대산 근처에서 생산되는 거 아니냐고요? 전혀 아닙니다.

오대산과 철원은 자동차로 약 200km 떨어진 지역입니다.


철원 오대쌀에서 철원은 지명이고 오대는 품종명입니다. 다른 예로 경기 수향미의 경우에 경기는 지명,

수향미는 경기도에서 재배한 ‘골드퀸’품종에 붙이는 일종의 지역쌀 브랜드명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쌀은

지명이 전면에 드러납니다. 왜 한국의 쌀은 지역명이 곧 품질을, 나아가 가격을 의미하게 되었을까요.






밥그릇,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쌀이라는 상품



3.'임금님표'


한국의 농수산물에는 ‘임금님이 드셨던~'이라는 문구가 붙는 것이 익숙합니다. 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임금님은 맛있는 쌀을 드셨을 테지만 임금의 입맛 또한 주관적이며 무엇보다 쌀은 주식으로서

많은 양을 조달하기에 주로 수도권에서 생산된 것이 많았습니다.


하여 지명으로 유명한 쌀을 보면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경기 이천쌀이 있죠.

한국에서는 지역명이 곧 쌀의 품질을 대변합니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 재배된 쌀은 지역을 옮겨서

도정, 포장할 수 없습니다. 쌀의 가격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4.다양성의 상실, 통일벼


1960년대 한국은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량 사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당시 정부에서는 ‘효율성’에 입각한 쌀을 개발하기에 나섰습니다.

결국 여러 품종의 교배와 연구를 통해 ‘통일미’라고 이름지은 품종의 벼가 탄생했습니다.


‘통일미’는 엄청난 생산효율로 쌀의 자급자족과 양조산업에 크게 기여했으며

학문적으로도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만, 재배가 강제되다시피 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다양한 품종의 쌀을 시장에서 볼 수 없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청동제 작두에 붙은 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쌀에 진심인 백의민족, 토종벼와 술



5.토종벼와 술, 정체성의 회복


통일미는 대체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보였지만, 1980년 '냉해'라는 예외적 환경에서 최악의 흉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양성을 잃은 생태계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큰 피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2022년 8월 대한민국의 폭우 피해도 그렇습니다.


많이 대체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한국은 '밥은 먹었어?'라고 밥으로 안부를 묻는 쌀밥의 민족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에 비해 쌀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식문화는 문화권,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요소입니다. 사건을 거쳐 역사와 정체성을 지닌 민족이 되는 것처럼 한 잔의 술이

나오기까지는 볍씨가 빛, 물, 바람, 흙, 시간 등을 만나고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에게 고유한

방식의 양조 문화로 계승됩니다.


한국의 술은 쌀을 발효, 증류시켜 만듭니다. 풍미가 응축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다 보니 원재료인

쌀의 차이가 결과물인 술맛의 차이에서는 비교적 크게 드러나게 됩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토종 벼의

보존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밥’보다 ‘술’의 재료로 보다 다양한 쌀이 소비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쌀은 술을 시작으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밥과 술을 더욱 다양한 취향으로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으면합니다. 맛있는건  못 참죠.


*월간한옥 33호 '술과 향유'에서는 쌀, 보리 등 술을 담그는데 사용되는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