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화 초록 이날 에워싸고 말한다. (월간한옥 29호)

관리자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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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상점
청록화 초록 이날 에워싸고 말한다.

-박경철



초록이 날 에워싸고 흙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둘러싸인 콘크리트 숲을 떠나,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따위 이제는 놓아 살라 말한다.  <청록집> 박목월이 읊은 ‘산이 날 에워싸고’는 나를 바라보며 넋두리 읊조리듯 아스팔트와 아파트 숲속의 지금을 애닳게 조소한다. 일제의 시대상을 빗대어 목가의 녹림으로 애환하던 당시의 글귀가 지금은 아파트 숲과 아스팔트 그물을 벗어나라는 듯 공명한다.



기차가 멈춰버린 공덕 철길의 공원은 새로운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1년을 불과하게 보낸 시간은 장마가 지난 후 훌쩍 커버린 풀들의 공간처럼, 이제 이곳은 아스팔트 거미줄 길과 아파트 숲으로 울창하게 엉켜 져 버렸다. 



무어의 숲을 지키는 어둠의 지배자 말레피센트가 인간의 근접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 넝쿨의 엉킴으로 숲을 지키듯 둘러싼 어둠의 공간처럼, 아스팔트와 아파트 그리고 빌딩의 혼재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부여잡고 있는 것 같다한길의 아스팔트가 골목의 구옥으로 통한 길에 매끄럽지 않은 모퉁이 집 앞으로 이어진다.

 


마포 나루터가 번성했을 때 지어졌을 듯 한 서까래 펼쳐진 오래된 한옥 그리고 그 골목길 안쪽으로 너르듯 편히 놓인 풀들이 부른다. 추녀의 양두머리 반쪽은 빗물과 세월에 박락돼 반쪽 넘게 썩어 있고, 썩어버린 부분만 가린 양철판의 모습은 추녀를 나무와 양판으로 나눠 만든 아수라 백작의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