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란 무엇일까] 공예: 기술의 연마, 몸으로 기억하다

관리자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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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우리도 모르게 대물림되는 것  


일상을 살면서 누군가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면 지금처럼은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말 한마디, 몸가짐 하나 조심스럽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하는 생각은 우리 머릿속 한구석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누군가가 보고 있던 그렇지 않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행동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공예라는 분야는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가 아닌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을 섬기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중요시했다. 지금은 기술이 지나치게 발달하여 선조들이 물러준 것의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는데 사실 그들의 지혜는 놀라울 정도로 앞서 갔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우리는 선조들이 물러 준 지혜를 일상생활에서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다.

 

컴퓨터, 휴대폰, 가전 기계 등이 없던 고대 시대에도 냉장고, 에어컨 그리고 난방 시스템이 있었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렸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토양은 고유의 기운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운명적 관계 속에서 사람은 태어난 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본능은 우리가 태어난 땅으로부터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연적 조건에 수긍하고 살 수밖에 없다.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유사성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깊게 관찰해 보면 토양이 주는 기운과 지혜는 다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땅의 70퍼센트 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적응”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ㆍ사계절이라는 '변화'의 토양이 길러낸 '적응'의 민족  


선조들은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을 했으며 24절기를 일상생활에서의 계절변화를 가늠하는 데 적용했다. 절기(節氣)는 계절을 세분한다는 뜻으로, 중국 주나라(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 때 처음으로 완성되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이런 절기에 적응하면서 타협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양으로부터 받은 기운, 지혜, 직감 등이 독특하다. 무더운 여름 더위에 적응했다 생각되면 곧 혹독한 추위가 몰려오고, 봄은 만개한 꽃으로 늘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가을도 봄과 비슷하게 단풍으로 또 다른 매력을 뿜는다. 그리고 다시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음력 9월만 지나면 찬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며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적응”을 잘 하다 보니 21세기에는 세계 어디에 가도 한국인이 있고, 정착한 곳에서 한국인은 열심히 살아간다. 뚜렷한 기후변화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으며 그곳이 어디든 생존을 위해 적응한다. 토양이 준 우리의 습성과 성향은 우리 몸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을 대물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무언가를 후손들에게 대물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ㆍ유산의 발견, 베란다와 바닥난방  


한국인이라면 어느 집에 가던 장독대를 연상시키는 공간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베란다 한구석에는 몇 개의 옹기(甕器) 항아리가 있다. 왜 아직도 이런 관경을 목격할 수 있을까? 대물림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발효음식을 즐겨 먹는 한국인에게는 옹기 항아리는 필수품이다. 선조들은 이것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만들었다. 따뜻한 지역의 옹기 항아리는 전 부분이 좁고 어깨 부분이 넓고 둥글다. 반면 강원도나 북부지역의 옹기 항아리는 전부분이 넓고 어깨가 좁고 형태가 길다. 그 외의 간장, 된장, 고추장과 젓갈을 담은 항아리는 형태가 다르다. 따라서 용도와 기후에 따라 형태가 최적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의 선조들의 과학적인 데이터가 누적되어 각기 다른 항아리를 만들었다. 겨울엔 항아리를 땅을 파서 묻어 땅의 차가운 기운으로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지금의 김치냉장고가 발생할 수 있었던 근거라고 생각한다.

 

또 추운 겨울에 밥을 먹고 난 후 한국인은 따뜻한 바닥에 몸을 지지며 간식을 먹는 것을 즐긴다. 할머니는 “아랫목에 누워 밤을 까서 먹자”라고 어린 손주들에게 말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난방 시스템이 바닥에서부터 열기가 올라오는 구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 또한 선조들의 지혜로 음식을 만들고 지핀 불로 집 전체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온돌 구조로 인해 만들어진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아파트 난방 시스템도 온돌의 구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리고 한옥에는 자연 공기청정기가 있었다. 창과 문에 사용된 한지는 통풍을 잘 시켜주며 공기가 집안 내에서 순환되게 하였다. 여름에는 집을 시원하게 하기 위하여 창과 문을 들어 올려 천장에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다목적으로 공간을 사용했으며 계절에 따라 변화를 추구했다.


 

ㆍ리사이클링의 민족, 안목의 탄생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는 recycling-upcycling을 잘 한 문화이다.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조각조각 이어 보관했으며 때에 따라 선물을 포장하는 보자기가 되기도 하고 상을 덮기도 했으며 다용도로 사용되었다. 한옥의 구조도 마찬가지이다. 필요에 의해서 교체되고 보완되었다. 기와, 기둥, 창호, 벽 등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고유문화는 기록에 의해서도 보존되었지만 사실 도제식 교육으로 전수된 것이 많다. 특히 음식과 재료를 다루는 데 있어서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 많다. 한 가지 기술을 연마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재료를 찾고 다루는 부분에서부터, 도구를 만들어 기술에 적용하는 것 등 기초적인 이해가 완벽하게 습득되기 전까지는 무언가를 만들 수 없었다. 즉 시간과 땀의 적당한 투자가 되어야만 후에 기술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근거를 두고 몸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irony) 한 부분은 재료를 다루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사회적 계층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 산물을 즐기는 계층은 사회적 위계질서 안에서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상류층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누군가의 인도가 필요했다. 이것을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 안목에 의해 새로운 것들을 만들었다.

 


ㆍ문화도 사람과 함께 시대를 살아가는 것  


안타깝게도 우리의 문화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격동적인 사회적 변화와 경제 성장으로 인하여 낯선 것들이 되어 버렸고 후에 작품으로 승화되어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선조들이 남긴 기술의 연마와 손으로 기억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작품과 실용의 사이에서 의미적 혼란을 대면하게 되었고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로 인식되었다. 서구의 근-현대 미술적 이론을 빌려오면서 여러 혼선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인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식민지 사상에서 비롯된 이념과 사상들로 인하여 아직도 정리 안 된 부분들이 내재하고 있다.


“접속의 시대(access)”에서 “구독의 시대(subscription)”로 전환하고 있는 지금 디지털 콘텐츠의 홍수로 무언가를 구매하고 소장한다는 개념이 바뀌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단기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는 콘텐츠 수혈에 목이 말라 있다. 인터넷으로 확장된 가상현실 공간 안에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간다. 잠들 때까지 정보의 섭취를 멈추지 못하며 잠에 들어야 비로소 전자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피로에 마비된 육체는 외면당한지 오래되었고 우리는 몽롱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반복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 많은 정보들 중 온전히 습득할 수 있는 범위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살아가는데 과연 필요한 것들일까? 만약 우리의 선조들이 이러한 21세기의 사회적 현상을 보았더라면 어떤 반응을 했을까? 디지털 콘텐츠의 홍수로 인간의 본능은 저하되고 있으며 지혜, 직감, 느낌 등은 무뎌져 버렸다. 몸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우리의 문화는 시대적 변화로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컴퓨터, 휴대폰, 정기도 없던 그 시대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사실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대시대에도 냉장고, 에어컨, 난방, 공기청정기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재활용이 몸에 배어있던 사람들이다. 우리 문화는 낭비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특히 일반인들은 필수품만으로 살아갔기 때문에 고대시대에는 지혜로운 생각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는 실용과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화려하거나 과하다는 느낌을 전달하기보다는 일상생활에 편의성을 중요시한 문화이다. 자연을 섬기고 받아들여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과학적으로도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향이 무엇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보존을 하기보다는 몸으로 기록하고 시간으로 연마하는 습관이 발달되었다.

 


우리는 지금도 대물림을 하고 있다. 흔히 보는 관경은 일상으로 바쁜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음식을 예쁜 목기, 도자기, 유기, 유리 용기 등에 담아 먹이기보다는 일회용 용기에 담아 빨리 먹이고 다음 학원으로 이동하는데 급해 있다.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후에 그 아이는 성장하여 좋은 그릇이 무엇인지 문화의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조차도 못 할 것이며 엄마가 했던 대로 대물림할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현실이다. 라면 하나라도 예쁜 그릇에 담아 먹어 본 아이와 다를 것이다. 공예란 우리의 생활에 산소와도 같은 것이다. 의식주에 기반을 두고 오감이 자극되어 보는 것 느끼는 것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커피를 먹는 잔은 입에 닿은 부분이 부드러워야 하며, 이미 마시기 전에 컵을 보고 우리는 결정한다. 이 커피가 맛이 있을 것인지 아닐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