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오페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뉴욕 구겐하임까지 이어진 인연
<영등포구 문래동 / 대선제분>
자족적 공업 도시의 '80년 흔적'
글 : 최호진 지음건축도시연구소 소장
사진 : 강민정
영등포 지역은 대한제국기인 1899년에 경인선, 1905년에 경부선이 개통하며 영등포역이 두 철도 노선의 분기점이 되면서 공업 도시로의 성장을 예견했다. 1930년대 들어 일제의 침탈이 극에 달하고 당시 경성의 도시계획이 맞물리면서 영등포는 자족적 공업 도시로 발전했다. 현 대선제분의 공장 위치는 일본의 일청제분(日淸製粉) 영등포공장의 터와 이어진다. 일청제분은 1936년 6월에 지금의 부지를 확보하여 공장 건립을 시작, 1937년 2월에 조업을 개시하는데, 이 공장은 조선제분(朝鮮製粉) 공장으로 운영된다. 1945년 광복과 6·2 전쟁을 거치는 하는 동안 1952년 항도 부산에서 수산물 거래를 주목적으로 계동산업(啓東産業) 주식회사가 설립되는데, 1958년 조선제분은 계동산업 창업자들에 의해 인수되어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1960년 이후부터 서울의 인구집중 현상이 심화하며 영등포 일대는 소규모 공장과 주택들로 변화하게 되는데, 대선제분 또한 공장의 지방 이전에 따라 지방으로 이전하여 영등포 공장은 빈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이 공장은 대규모 블록 단위 개발이 완료된 옛 방림방적 부지와 경성방적 부지의 삼각형 사이에 옛 건물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설 변화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대선제분의 재생은 2단계로 진행될 예정이다. 목재창고 2동(1936), 정미공장(1936), 식당, 함석조창고(1936), 부대공장(1936), 본관(1936, 1978 증축), 소방실(1936), 2호 창고(1936, 1996 증축)가 있는 대지의 중앙과
북서면과 남측 면의 1단계 영역과 제분공장(1936, 1969 증축), 원맥 사일로(1962, 1988 증설), 밀가루 사일로(1988, 1995 1차 증설, 2003 2차 증설), 가설 원맥 사일로(1994 증설), 1호 창고(1988)가 있는 대지의 북동면의 2단계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대선제분에서 가장 기대되는 공간은 대형창고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기둥이 없는 넓은 창고에 지붕 구조인 목재 트러스와 당시의 재료들을 보며, 그 길게 이어진 창고의 측면으로 들어오는 빛줄기를 통해 향후 이곳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감이 커진다. 서울에서 기반시설로 지어진 특정 용도의 건축물들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으나, 이렇게 민간에서 사용했던 1930년대 산업시설은 그리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곳곳에 남아있는 글씨, 바닥에 남아있는 창고 시절의 흔적들, 낡고 빛바랜 목재와 양철판 등 하나하나 80여 년 세월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또한 정미공장, 함석조창고, 목재창고 등 모두가 산업을 위한 용도의 시설이었던 만큼, 일반적인 건축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높은 층고의 공간감을 느끼며, 실내 운동장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드는 곳이다. 기계와 장비, 그를 운용하던 사람들이 드나들던 공간에서, 시민들이 들어와서 옛 시설물의 흔적과 새롭게 더해질 기능을 통해 구석구석 다니며 타임슬립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공장용지의 정문으로 들어와 마주하게 되는 본관동은 이곳에 들어올 때 순간적으로 과거로 들어왔음을 직감할 수 있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들의 사무공간으로 쓰던 공간은 당시의 지하실과 계단, 공간의 규모가 공장 시설로 쓰던 창고들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차를 타고 공장 본관 앞에 내려서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불러낸다. 본관과 창고 군으로 둘러싸인 넓은 마당은 부지의 형태에 순응한 삼각형 모양을 띠고 있으나, 네모반듯한 것보다는 창고 시설로 둘러싸인 시간여행의 마당이 된다. 이곳 어딘가에 과거로 갈 수 있는 포탈이 열릴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장비와 대형차들이 드나들었을 마당에 방문객이 서 있는 기분은 건축물 안에서 내부에서의 활동과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마당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공장 시설의 창고 외에도 이 시설의 유지를 위해 지어졌던 소방실, 작은 마당과 연결된 식당, 본관 뒤로 연결된 부대공장, 그 안에 이 시설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고된 하루를 식사로 보충하고 씻는 공간을 함께 돌아보며,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에 기여했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치열했던 삶을 공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옛 시설의 현대적 재생은 구조 보강, 용도 변화, 공간 계획 등 법적인 요건을 해결하는 부분이 쉽지 않고, 현재의 사람들이 이용하기 위한 접근성 개선과 다양한 유형의 시설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
참고문헌
영등포구, 『영등포구지』, 1991.2
영등포구, 『영등포 근대100년사』, 2011.1
김하나, 「근대 서울 공업지역 영등포의 도시 성격 변화와 공간 구성 특징」,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