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오페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뉴욕 구겐하임까지 이어진 인연
<창호를 통해 본 한국건축 1 / 강화 정수사>
화려한 꽃살 입은 소박한 사찰
글 : 강혜정 연성대학교 건축과 교수
사진 : 한수진, 김영문
강화 정수사(淨水寺)는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들어가는 입구에 일주문이나 삼문 등이 없다. 그저 정수사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가면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정수사가 보인다. 마치 소소하게 필요한 것만 갖춘 것처럼 존재한다. 마당에 서 있으면 사찰 건물들이 보듬듯이 주변을 두르고 있다. 정수사는 경내에 대웅보전, 삼성각, 요사채와 종무소가 있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앞으로 서해가 내려다보인다.
대웅보전 정면 한가운데 있는 꽃살창호는 소소했던 정수사의 반전과 놀라움을 보여 준다. 네 짝으로 이루어진 꽃살은 여느 사찰의 꽃살보다 단연 최고로, 아니 과하게 화려하다.세월의 흐름에 단청이 바래고 벗겨져 간결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 줄 것 같던 창호는 장인의 기술로 정교하게 새겨진 꽃살에 화려한 단청으로 치장한 매력을 뽐내며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너무도 완벽한 매력을 지닌 정수사의 당당한 자태는 시선을 사로잡을 만하다.
정수사는 강화도 마니산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강화도 남쪽에 있다. 정수사 법당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1호로 지정되었으며, 신라 선덕여왕 8년(639년)에 회정 선사(懷正禪師)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건 시 ‘정수사(精修寺)’라고 칭했던 것을 세종 8년(1426) 함허대사가 법당 서쪽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정수사(淨水寺)’로 고쳤다고 한다. 그때의 법당 위치와 지금의 위치는 조금 다르다. 현재 정수사에는 함허당의 부도가 있다. 정수사에 관한 기록은 상량문에 근거하는데, 상량문 기록에 따르면 1423년 처음 중창하고 최근 2004년에 8중창을 했다. 상량문에는 초창에 관한 기록은 없고 처음으로 중창한 1423년의 기록만 있어 초창 시기를 알 수 없다. 상량문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른 자료에 중창이 두 번 더 있었다는 내용이 발견됨에 따라 총 10번의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정수사 대웅보전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이다. 주심포 양식은 고려시대 건축양식으로 조선 초기까지 사용되었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다포 양식으로 보편화해 변화를 이루게 된다. 보통 사찰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지는데, 정수사 대웅보전은 전면에 퇴가 있는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이루어져 특이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전면의 퇴는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1524년 중창 때 덧붙인 것이다. 측면을 바라보면 거대한 풍판이 눈에 들어온다.
전면의 퇴 부분을 덧붙이다 보니 풍판의 모양이 비대칭이 되어 퇴 쪽으로 길게 늘어난 모습을 하고 있어 거대해 보인다. 정수사는 공포 형식과 부재 모양으로 보아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 건물로 추정된다. 창호는 총 6칸으로 정면 3칸과 배면 3칸에 모두 창호가 있고, 좌측면과 우측면에는 창호가 없다. 정면 가운데 칸은 꽃살이고, 정면의 좌우측 칸은 정자살이다. 가운데 칸 창호는 4짝의 사분합문, 좌우측 칸은 3짝의 삼분합문이다. 정면 창호는 밑에 궁판이 있으며 모두 들여열개이다. 가운데 사분합문은 가운데 두 짝을 바깥쪽으로 열어 들어 올리고, 좌우측 칸의 삼분합문은 가운데 창호를 바깥쪽으로 열어 들어 올리는 구조다.
정면 가운데 칸의 꽃살창호는 통판투조꽃살로 회화적인 특성이 있다. 이 꽃살은 사례가 많지 않아 그만큼 가치가 높고 희귀하다. 그리고 통판투조꽃살은 주로 빗살이나 정자살의 바탕살 위에 조각한 판재를 덧붙인 창호를 사용하는데 정수사 대웅보전의 꽃살은 바탕살 없이 조각한 판재만 창살로 사용한 창호로 매우 보기 드문 창호이다.
정수사 대웅보전 꽃살은 화병에서 줄기가 뻗어 나와 꽃이 핀형상을 하고 있다. 꽃살창호에 꽃이 화병과 함께 조각된 것은 매우 드물다.북한의 심원사와 관음사를 제외하고 남한에서는 정수사가 유일하다. 꽃살은 장엄함과 위상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꽃 공양을 한다. 불교에서 꽃 공양 방법 중에 화병이나 화롱에 꽃을 꽂아 공양하는데, 화병은 불교미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길상 중 하나이다. 네 짝의 창호는 가운데 두 짝과 양 끝의 두 짝이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다.
가운데 두 짝에는 연꽃과 연잎이 새겨 있고, 양 끝의 두 짝에는 모란꽃과 잎사귀가 새겨 있다. 각 창호에 새겨 넣은 문양이 완전한 대칭은 아니지만 거의 흡사하다. 네 짝 모두 꽃이 피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부터 만개한 꽃잎까지 매우 정교하게 새겨졌다. 이는 꽃이 성장하는 모습을 세세하게 표현한 것으로 화병 안의 작은 세계에서 더욱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가는 형상이 마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꽃살 안에 담아 놓은 듯하다.
북한 개성 대흥산성에 있는 관음사 대웅전은 1646년에 지어진 사찰로 이곳에는 정수사 대웅보전과 매우 유사한 꽃살이 있다. 배면에 있는 창호 두 짝이 정수사 대웅보전과 같이 화병에서 줄기가 뻗어 나와 연꽃이 핀 형상을 하고 있다. 두 짝은 대칭이 아니며 왼쪽 창호는 화병 양옆에 물고기 두 마리가 있고, 위쪽에는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는 전해 내려오는 설에 등장하는 목수를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오른쪽 창호는 연꽃을 조각하다 미완성된 창호로 위쪽 연꽃 부분은 조각되지 않은 채 단청만 되어 있다.
사찰에서는 꽃 공양의 다른 표현으로 불전 천장을 치장한다. 정수사 대웅보전의 천장에도 꽃이 그려져 있는데 다른 사찰과는 다른 특이한 점을 볼 수 있다. 정수사 대웅보전의 천장은 우물반자와 빗반자로 되어 있는데 우물반자는 중앙에 위치하고 빗반자는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빗반자는 X자형으로 반자귀틀이 있고 그 위에 장반자를 깔았다. X자로 된 반자귀틀에는 연꽃과 연잎, 모란과 잎사귀 그리고 물고기가 초각되어 있으며 연꽃은 주로 만개한 형상을 하고 있다. 빗반자의 초각은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귀틀의 끝에 화병 모양의 부재가 우주의 주두 위에 있다.
화병은 꽃살에 있는 화병과 같은 모습인데, 화병에서 귀틀이 시작되는 형상이 마치 화병에서 줄기가 나와 꽃이 피는 꽃살처럼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꽃살과 같은 의미로 연계해 빗반자에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화병이 있는 곳 외에 귀틀이 시작되는 부분에는 초각한 연꽃 모양의 부재가 있고, X자형 귀틀이 교차하는 부분에도 연꽃과 모란꽃을 초각한 부재가 있다. 빗반자귀틀의 모란, 연꽃, 연잎의 정교하고 섬세한 초각은 꽃살창호의 정교함과 같은 표현으로 정수사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한다. 빗반자귀틀의 꽃 또한 꽃 공양의 의미로 해석된다. 빗천장과 꽃살의 화병 표현은 서로 연계된 의도로 해석할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작은 면적에 소박한 느낌마저 드는 정수사의 꽃살은 숨은 보물을 찾은 것처럼 놀라움을 준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병에서 꽃이 피는 형상이 새겨진 이 통판투조꽃살은 그 가치만큼이나 화려하지만 지나치지 않다. 정교한 조각에 화려하게 단청된 꽃살, 각 화병의 색과 무늬까지 지나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간결한 정수사 건물에 더없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제 몸에 딱 맞는 옷처럼 화려한 꽃살은 정수사에서 그 존재감을 당당하게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