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오페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뉴욕 구겐하임까지 이어진 인연
<한국의 다리2 / 경주 불국사>
신라인의 꿈, 불국정토 가는 길
글 · 사진 : 장헌덕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한반도에 전래한 불교가 선종(禪宗)의 영향을 받아 조용한 자연으로 들어가면서 다리는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가름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효성이 지극했던 김대성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짓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다고 한다. 토함산 기슭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석불사는 화강석을 곱게 다듬질하여 아치 구조로 쌓은 석굴사원으로 이러한 구조는 현생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는 불국사에서 더욱 화려한 꽃을 피워 세계 속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신라인들은 이승에 부처님의 나라, 불국(佛國)을 세우는 것이 꿈이었기에 불국사라는 이름 자체가 신라인들에게 큰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불국정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신라의 장인들은 지극정성으로 돌을 다듬었다. 죽순처럼 치솟은 돌기둥과 제멋대로 생긴 돌들을 정성스럽게 쌓은 높다란 석단 위의 공간은 그들의 이상세계인 불국의 나라이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동쪽에는 아랫단에 17단의 디딤돌을 놓아 청운교(靑雲橋)를 만들고 그 위로 16단의 디딤돌로 백운교(白雲橋)를 놓았다. 이 33개의 계단을 오르면 자하문(紫霞門)을 지나 대웅전 좌 · 우에 놓인 다보탑(多寶塔)과 석가탑(釋迦塔)을 마주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 숫자가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서른세 가지 단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7단의 청운교 하부 양측 면에는 4대의 장대석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는 긴 장대석의 부재를 놓아 기본 틀을 만들고 기둥 사이에는 판석을 끼웠다. 그리고 17단의 디딤돌 중앙에는 긴 가름돌을 놓아 오름과 내림을 분리했다. 계단 돌의 양측 좌 · 우로는 통돌로 다듬질한 긴 소맷돌을 놓고 그 위에 놓인 2개의 난간 하엽은 둥글게 깎은 기다란 난간을 받치고 있으며 소맷돌 앞쪽 양단에는 엄지기둥을 세워 미끄럼을 방지했다.
청운교에서 백운교 사이에는 평평한 계단참을 두어 상 · 하 공간을 분리하고 있는데 지금의 현대건축에서도 일정한 높이의 계단에는 참을 두도록 법규로 규정하고 있어 안전을 고려한 신라 장인들의 지혜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계단참 하부의 기초는 양쪽으로 돌기둥을 세워 그 위에 긴 장대석을 걸쳐 가구식으로 틀을 짜고 11개의 돌로 아랫단의 홍예석을 만들고 그 위에는 얇고 큼직한 2개의 반원형 석재를 끼워 2중으로 홍예부를 구성하였는데 그 가운데 역사다리꼴 이맛돌은 매우 인상적이고 홍예의 내부천장은 궁륭형을 이루었다. 홍예 위로는 처마 곡선이 있는 지붕돌로 마감하고 그 양쪽 모서리에는 돌기둥을 세워 상. 하의 난간을 연결했다.
높은 석단을 이룬 청운교 윗단의 백운교 하부는 기다란 돌기둥을 죽순처럼 세워 3단으로 가구 틀을 구성하여 견고하게 기초부를 만들고 이 기법을 양쪽 축대로 연장하여 석단을 받치는 수백 개의 기둥은 신라 장인들의 역동감이 살아 있는 듯하다. 그 위에 놓인 백운교의 디딤돌은 16단인데 그 좌 · 우로는 청운교와 마찬가지로 긴 소맷돌을 놓아 그 끝이 자하문 기단과 짜아지도록 하고 사방으로 난간을 둘
렀고 그 하부는 목조건축의 첨차형 석재를 길게 내밀어 처마 곡선이 있는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일부 부재는 1970년대 보수공사를 거치면서 신재로 보충되기도 했다. 극락전으로 오르는 서쪽에는 불국사 사적(佛國寺事蹟)에 연화(蓮花)와 칠보(七寶)의 2개 다리로 아미타불과 보살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으로 삼았다고 하여 이 다리는 아미타불이 있는 극락이 연화와 칠보로 장식되어 있다는 불경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단으로 구성된 연화 · 칠보교는 아랫단의 연화교가 10단, 윗단의 칠보교가 8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화교의 제일 윗단 계단디딤돌에는 양쪽으로 큼직한 연판을 조각하여 이 다리의 상징적인 의미를 더했다. 연화교와 칠보교에도 청운교에서와 마찬 가지로 가운데에 오름과 내림의 가름돌을 놓았고 계단참 하부에는 간단한 아아치보 형태의 부재를 걸쳐 청운교보다는 간략화된 홍예를 구성했다.
이 연화. 칠보의 18단 계단을 오르면 안양문(安養門)을 지나 극락전으로 들어가게된다.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의 석단에 있는 범영루(泛影樓)는 원래 경전을 보관하던 우경루(右經樓)로 알려져 있다. 이 누각의 양측 기둥 하부는 목조건축 포작(包作)에서 보이는 운공형(雲工形) 부재를 겹겹이 십자로 짜아 그사이 공간을 둥근 보름달 모양으로 승화시켜 그들의 이상을 기원하지 않았을까?
『고금창기(古今創記)』에는 이 건물을 수미산 모양의 팔각 정상에 누각을 짓고 그위에는 108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누각 아래석단을 긴 장대석으로 틀을 짜아 그 사이사이에 채워 넣은 울퉁불퉁 돌들은 그 나름의 해학적인 맛을 느끼게 하고석루조에서 떨어지는 물이 9품 연지로 흘러 들어가도록 했다. 『불국사 고금창기』에서 보듯이 청운교 · 백운교 · 연화교 · 칠보교는 신라인들이 꿈꾸던 불국정토의 길로 이어지는 영원한 다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