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41 다른 방식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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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 개의 명판, 세 명의 인터뷰  

아현공방 ⓒ월간한옥 


월간한옥 35호에서는 아현동 주택가 골목 깊은 곳에 위치한 아현공방을 찾았습니다. 이번 호 인터뷰에는 전통 장석 직종의 숙련기술전수자인 양현승 장인과 그의 30년 동료 김병철 장인, 20년 동료이자 양현승 장인의 아들인 공방의 막내 양동일 장인 세 사람과 나눈 대화를 담았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양현승 장인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본인보다 더 유명한 이들이 많은데 굳이 자신을 인터뷰하는 게 큰 도움이 되겠냐며 스스로에게 겸손한 모습을 보였던 그는 인터뷰를 진행함에 앞서 단 한 가지의 제안을 했습니다. 인터뷰는 자신을 포함해서 현재 함께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진행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급하게 말을 덧붙였습니다. "장석에 있어서는 그 친구도 저랑 다를 바 없는 기술자예요. 기술이 엄청 좋아요"


그렇게 인터뷰 당일 총 세 개의 질문지가 준비됐습니다.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오롯이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고, 인터뷰를 진행했던 공방 한 켠 기둥에는 '전통장석 직종 양현승'이라고 새겨진 숙련기술전수자 명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과묵한 줄만 알았던 김병철, 양동일 장인은 인터뷰 중간중간 처음 보는 미소를 지으며, 질문지에 없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세 사람이 두들기는 장석에서는 삼중으로 소리가 층을 이뤄 더욱 다채롭게 들렸습니다.


ㆍ'장인'의 정면, 무형문화재  

종묘재례악 ⓒ국가무형유산원 


우리 사회는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와 필요성을 알기에 그동안 '무형문화재', '이수자', '전수자' 등의 칭호와 소정의 혜택과 권위를 부여하여 그 맥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문화재가 전승, 연구되고 있으며 대중적인 인지도 또한 쌓아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장인은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를 중심으로 인식됐습니다. 국가 인증 제도로 공인된 성격을 띄고 자연스럽게 무형문화재라는 타이틀은 앞선 긍정적 기능과 함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에 대한 상대적인 평가 절하 등의 문제점도 낳고 있습니다. 하여 최근에 들어서는 '사람'이 아닌 '무형의 유산'을 중심으로 문화재 지정을 하는 등 다방면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1962년 시행)는 1호인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149호인 윷놀이까지 연구와 조사를 통해 꾸준히 늘려가고 있지만 아직 '무형문화재'라는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장인들이 우리 생활 곳곳에 존재했습니다. 하여 근현대적 생활에 맞는 장인들도 패션, 건축, 전기, 인쇄, 제과·제빵 등의 분야에서 '대한민국명장(1986년 시행)', '숙련기술자전수자(2013년 시행)'를 선정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장인들에게도 주목하고 있으며 명판과 증서를 수여하고 장려금도 지급하고 있습니다.


ㆍ'장인'의 이면, 생활 속 장인들  

황학동 ⓒ월간한옥


하지만 여러 보완 제도 마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몇몇의 무형문화재 전승자를 제외하고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업종이 한정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줄어드는 시장 규모로 기술 전수 대상자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찾게 되더라도 그들의 인건비를 감당하기에 지원금은 미비한 수준입니다.


양현승 장인 또한 아들인 양동일 장인을 전수 대상자로 등록하여 숙련기술 전수자가 될 수 있었으나, 동료인 김병철 장인은 전수 대상자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 들어오는 일들로는 더 이상 사람을 채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중 '경기도 도당굿'은 2011년 기능보유자 사망 이후 전승교육사가 없어 사실상 해체 직전까지 갔으나 2021년 보존회 형태로 겨우 그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우수 이수자 외에 이수자와 전수자에 대해 지원금이 전무해 중도 포기하거나 아예 배우려 하지 않아, 현재 전승교육사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문화재도 있습니다.


'대한민국명인'이나 '숙력기술자'제도는 시행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고 여전히 제도권 밖에 머무르고 있는 생활 속 장인이 많을뿐더러 지정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기계보다 정확하지 않거나, 빠르지 않거나, 저렴하지 않다면 명판의 여부와 상관없이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제주 살레' 현병묵 장인은 "되레 명판을 보고 가격이 비쌀 거라 가늠해 이용을 꺼리는 이들도 있다."(목공, 목수, Carpenter : 어떻게 45년 동안 같은 일을 했나?, 브로드컬리, 2020)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황학동 ⓒ월간한옥


또한 디자인이 주요 산업으로 부각되면서 공예를 대표로 전통적 요소들은 숙련된 기술을 보유하고, 현장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관점으로 다뤄지기보다는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주를 이룹니다. 그 결과 숙련된 장인의 기술은 디자인 상품으로서의 가치나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실용보다는 미감에 초점을 둔 시각적인 장식품을 만드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장인'을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기 위해 매체와 콘텐츠에서는 제도권을 벗어나 '장인'에 대해 각자 새로운 정의를 내려가며 현장을 취재하고,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변화하는 산업 구조와 대상 업종 확대, 홍보 및 이·전수자 확보를 위해 좋은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디자인이나 예술, 제품 트랜드와 친숙해질 수 있고 젊은 세대, 이종분야와 교류할 수 있는 박람회, 프로그램 등이 마련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한류, K-콘텐츠의 영향으로 대표적으로 '한복' 등 한국적 정체성이 담긴 문화 요소가 국내·외에서 다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문화 동북공정'을 앞세운 위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적 정체성을 견고히 지켜가기 위해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두고 본래 형식과 형태, 고증에 대한 인지를 바탕으로 한 재해석이 필요하며, 그를 위해서도 장인과 기술의 맥을 이어가는 것은 더욱이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ㆍ이면을 바라봐야 할 때  

서예가 인중(仁中) 이정화 ⓒ월간한옥


월간한옥 편집부는 23년도를 시작하며 '장인'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을 모아 국가무형문화재, 대한민국명장, 숙련기술자가 아닌 이면에, 그리고 일상 속에 존재하는 장인을 조명하며 기존의 디자이너, 에디터, 기획자의 관점가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담아 보기로 했습니다.


35호의 인터뷰 기사에서는 인터뷰어로 서예가 송민(松民) 이주형의 제자이자 딸인 서예가 인중(仁中) 이정화님이 참여했습니다. 양현승 장인 또한 제자이자 아들인 양동일 장인과 함께 공방에서 장석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란히 앉아 장석을 두들기는 모습에서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봤던 이주형, 이정화 두 서예가가 나란히 앉아 한지 위에 붓을 옮기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이정화 서예가는 장석을 만드는 일이 "한지 위에 붓을 옮기는 것이 철판 위에 정을 옮기는 것과 닮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무엇이 더 좋은 시각이며 관점인지는 개인마다 다르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다른 시각과 관점'을 담을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영화를 고를 때도 주연배우나 감독이 아닌 음향, 연출, 각본, 작가를 살피는 이들이 많습니다. 개인의 영향력과 경제적인 가치는 다를 수 있지만 가치는 다양하며 개개인은 상호 간의 높고 낮음이 아닌 서로 맡은 역할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사회가 인지해 가고 있다는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눈이 더 많은 이면을 발견할 수 있도록 월간한옥 또한 함께 고민하고 탐구하겠습니다. 월간한옥 35호는 모든 취재를 마치고 다듬기에 들어갔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올 때 즈음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월간한옥과 함께 다양한 이면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ㆍ지난 월간한옥, 다시보기  


송영도 장인


“전통은 시간·역사속에서 진화하는 것이라 생각”


“오래된 것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인연은 취미생활로 시작해 15년 개인사업을 정리하고 삶의 업으로 살아가게 된 지금의 현실이 됐다.” 날씨 좋은 경주에서 만난 송영도 장인은 한창 일하고 있을 때 찾아간 기자를 맞이하며 주고 잠시 쉬어가는 느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진주에서 경주로 올라오신 정연조 선생 문하에서 인연이 되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송영도 장인은 처음 몇 년간은 열악한 분야의 현실에 많이 힘들어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송영도 장인은 “20대에 시작한 작은 개인사업을 정리하고 공방에서 일을 하며 전통과 목수 분야의 열악함에 몇 번이나 그만두려는 마음을 다잡고 지냈다”며 “그렇게 지난 몇 년 후 전통문화대학교 교육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며 박명배 선생님께 사사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전통 분야의 목수 일을 배우는데 있어 너무나 열악한 현실 때문에 내가 아닌 다음의 누군가가 이 일을 이어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내가 할 수 있는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작업과 집을 같은 곳에 설계해서 만든 공간에서 일하는 송영도 장인은 본인의 작업세계에 대한 질문에 “너무 복잡한 구조적·디자인적 작업은 지양하며, 간결하고 심플한 구조와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다”며 “오브제로서의 가구도 존재할 수 있지만생활에서 쓰임새 있는 가구를 만들어 손때가 묻어가는 세월의 흔적을 내가 만든 가구 속에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0~200년이 지나면 전통의 기준은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그 기준의 변화를 내가 완성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고민하고 고민의 흔적이 다음 사람에게 이어져 그것이 쌓여 새로운 전통의 기준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며 작업한다”고 본인의 지향점을 밝혔다.


올해 초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주최로 열린 ‘제13회 전통미술공모전’에서 특선을 수상한 고등학생 아들의 이야기를 묻는 질문에는 “같은 생활공간에서 지내다보니 이런저런 것들을 도와주고 있다. 또 본인이 보고 만들어보는 등 조금씩 가르치다보니 자연스럽게 소목교육을 하게 되었다”며 “지난해부터 만들어본 서안을 변형해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요소를 부각시킨 작품으로 수상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또 아들이 전통장인의 길을 걷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나는 늦은 나이에 소목 일을 배워 지금의 모습으로 노력하고 살아가는데 아들의 관심과 의향이 정해지면 그 길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영도 소목장은 “우리의 ‘선’ 즉, 전통의 색을 살리면서 이것이 생활공간인 아파트
또는 직장의 사무실 내지는 로비의 공간에서 우리 느낌이 전해지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며 “쓰임새 있는 가구를 만들어 전통의 진화된 모습으로 현대 생활 속에서 영속되는 가구만이 진정한 전통의 진화다”라고 했다.


전통은 시간의 변화 속에서 조금씩 진보하고 백년이 지나면 그 전통의 기준이 일보하고 쌓여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그만의 철학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월간한옥 3호 (2017년 4월호) ⓒ월간한옥


발행인 Publisher

박경철 Kyoungcheol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