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어느새 끝자락에 닿고, 길어질 것 같은 올해의 추석 연휴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추석은 한가위라고도 부르며,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추석은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는 가을 추수를 앞두고, 조상을 비롯한 여러 신앙적 대상에게 감사와 기원을 보내는 기간입니다.
현대에는 그 문화가 많이 바뀌어 명절 때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민속신앙과 풍속적인 요소가 우리 삶에 남아있습니다. 추석 외에도 설날에는 간소하게나마 떡국을 챙겨 먹고 복날에는 삼계탕뿐만 아니라 대체제로 치킨을 비롯한 닭요리와 각종 보양식을 즐깁니다. 과거에는 그 기원이나 의미를 모른 채로 따라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 으레 하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만, 알게 될수록 문득 과거에 어른들을 따라나섰던 성묘나 제사의 양식이 이해되며 다시금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난 '월간한복 뉴스레터'를 통해 드라마 '악귀'를 시작으로 무속신앙과 한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드라마 '악귀'는 악귀에 씐 여자와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민속학자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민속학의 주요 요소인 무속신앙의 다양한 양식과 설화 등을 활용한 설정이 드러나는데요. 무속신앙은 민간의 종교의식으로 지금보다 과거에는 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존재했으며, 복날 등의 세시풍속 등을 통해 여전히 우리 삶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요소는 드라마 속 이야기가 더 가깝고 흥미롭게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하죠.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민속신앙의 공간, 조형적 요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을신앙의 중심지 서낭당
드라마 '악귀' 속 덕달이 나무 / 사진 SBS
의령 성황리 소나무 / 사진 문화재청
과거에는 지역 공동체의 색이 강했습니다. 하여 마을마다 믿는 신이 있으며 마을의 입구나 경계, 오래된 나무 등을 중심으로 무속신앙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악귀>에서는 어린아이의 시신을 관 대신 독에 담아 매다는 '덕달이 나무'가 나옵니다. 네 갈래로 넓게 뻗은 영험한 분위기의 소나무는 실제 경남 의령군 천연기념물인 의령 성황리 소나무로 마을의 서낭신이 머무는 서낭나무로 여겨온 것입니다. 성황리 소나무와 30m 정도 떨어진 곳에 다른 소나무가 있는데,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으면 크게 기뻐하고 축하일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실제로 나무 옆에 설치된 문화재 안내판에는 '두 가지가 맞닿았던 1945년에 광복이 되었다'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을 모시는 곳으로 마을 입구나 고개에 자리했습니다. 도시의 경계이자 영엄한 느낌을 주는 상징적 공간으로 지역마다 그 명칭이 조금씩 달라 성황당, 할미당, 천왕당,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형태에 있어서는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덤이나 자연 암석, 신목으로 여겨지는 서낭목(서낭나무, 당산나무), 제단 혹은 당집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돌과 나무 같은 자연적 요소에 신이나 정령이 깃들었다고 여기는 신목 샤머니즘부터 제단이나 당집처럼 구성과 양식을 갖춰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낭당에서는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가뭄이나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도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나무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설화와 기원,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단군신화에는 신단수가 있으며, 유대교의 세피로스의 나무, 북유럽의 위그드라실 등이 있죠. 조선시대 무속신앙에서는 이를 서당목, 서당나무, 당산나무 등으로 불러왔으며 주로 느티나무, 팽나무, 돌메나무, 음나무, 회화나무, 소나무가 있었죠. 마을의 서당목은 가장 크고 굵은 나무인 경우가 많았고 아직까지도 천연기념물로 등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서낭목에는 오색의 천이나 종이오라기, 머리카락 등을 거는 풍속이 있으며 이는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서낭당
당집은 비교적 근대까지 존재하며 과거에는 보통 초가집이었으나 현대까지 남아있는 당집은 그 재료가 나무에서부터 벽돌, 콘크리트로 지어진 것까지 있습니다. 보통 네모반듯한 좌우 한 칸 규모로 정면의 문을 들어서면 각종 신체를 모시는 제단이 위치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부는 제단 뒤에 무신도(巫神圖) 같은 그림이 놓여져 있기도 하죠. 제단에는 초나 향을 피우고 음식을 올려 제사를 지냅니다. 당집은 날씨와 계절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나 규모가 비교적 작아 근대에 오면서는 당집의 규모를 크게 짓거나 내부에 수도와 난방 시설을 두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여타 문화와 마찬가지로 무속신앙 또한 지역별로 그 명칭과 양식, 형태가 각기 다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는 독특한 무속신앙이 자리 잡은 지역으로 제주 지역에서만 1만 8천여 명의 신을 모셨으며, 심방이라 부르는 육지의 무당과 같은 무속인이 존재했습니다. 그만큼 제주에는 많은 당집 또한 존재했는데, 제주의 풍속을 꼼꼼히 그려놓고 기록한 조선시대의 청백리 목사 이형상이 '음사(陰祠)'라는 이름 아래 당집들을 부숴버리며 소실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석조문화가 발달한 제주에는 돌담과 돌하르방을 비롯해 무덤 근처에 세워 두는 석인상인 동자석 등 고유한 민속신앙과 자연환경에 맞는 조형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집
드라마 '악귀'에서는 나무와 당집처럼 마을의 중심이 되는 무속신앙의 공간인 서낭당을 구성하는 요소뿐만 아니라, 집 대문이나 어귀 그리고 서낭목에도 걸어두는 '금줄'도 극을 전개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새끼줄은 동북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발견되는 샤머니즘 문화이지만 한국에서는 짚으로 꼰 새끼줄을 금줄로 사용하며, 보통의 새끼줄은 오른쪽으로 꼬아 쓰지만 금줄로 사용되는 새끼줄은 왼쪽으로 꼬아 씁니다. 금줄은 귀신과 액을 막는 것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고추, 솔잎, 숯 등을 꼬임 중간에 매달아 쓰기도 하며, 이는 신앙적인 의미도 있지만 갓난아이가 있음을 외부에 알리고 외부인의 출입을 삼가 병균에서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집, 장독 등에 사용되었던 금줄
드라마 '악귀'에서는 악귀와 관련된 물건을 금줄로 묶어 땅에 묻음으로써 그 기운을 억제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함경도에서는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릴 때 물건에 붙은 악귀를 떼어내기 위해 물건에 금줄을 매어 던져 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구산영 또한 악귀가 찾아오는 저녁 시간에 악귀를 막기 위해 방 전체에 금줄을 두르는 방법을 쓰기도 하죠.
동북아시아에서는 새끼줄을 무속신앙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또 세계적으로 줄이 결계, 봉인 등을 상징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벼농사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인터뷰, 머무는 공간과 한국적 정체성에 대해
경주 / 사진 월간한옥
이번 여름호 N.36 는 <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숙박문화와 쉼, 여행에서 발견한 한국적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월간한옥은 한국적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매호 관련된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적 정체성을 담은 숙박 시설, 혹은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경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의 도시로, 신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 풍부하게 자리 잡았으며, 그 주변을 따라 늘어선 한옥이 이루는 풍경이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경주 황리단길에 자리한 한옥 소요재는 '마당'을 중심으로 한옥이 가진 정체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여관>은 여러 공간과 함께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전합니다.
'소요재'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마당으로 드러나는 공간의 정체성, 경주 '소요재'
높은 곳에서 보면 한옥의 기와와 기와가 파도처럼 이어져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경주 황리단길, 사정동 골목에 위치한 '소요재' 는 1973년 지어진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한옥 스테이입니다.
소요재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요소는 '마당' 이 있다는 점입니다. 소요재는 남동향으로 지어진 'ㄱ'가 구조의 한옥으로 건물과 담에 의해 형성된 작은 마당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마당은 자연을 뜻하며 마당(자연)-집-사람이 연결되어 비로소 하나가 되고 마당이 소통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소요재에는 마당 즉,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쪽마루가 있습니다.
외부와 내부를 단절시키는 역할인 대문이 열리면 외부와 마당 집 안의 공간이 사람으로 인해 소통되어 연결되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열린 대문으로 한옥을 바라보면 공간이 중첩되어 깊이 있게 흐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과거와 공존하는 도시 경주에 자리한 소요재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미학을 담아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공간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머무름 자체가 쉼이 되는 공간, 소요재에서 경주 여행에 풍요로움을 더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장승은 한국의 대표적인 토테미즘으로 마을의 수호신 여겨 믿고 받들던 조각상입니다. 지금에야 유물 취급을 받지만 20세기 초에는 장승이 없는 마을이 드물 정도로 장승이 많았습니다.
장승은 천하대장군이라고 부르는 남성형 조형물과 지하여장군이라 부르는 여성형 조형물이 짝을 이뤄 마을의 경계나 동서남북 오방에 세워집니다. 남장승은 머리에 관을 쓰고 눈을 부릅뜨고 덧니와 수염을 달고 있으며 여장승은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찍고 몸체를 청색으로 채색하기도 합니다. 보편적으로 나무로 만들어 길게 뻗은 장승이 알려져 있지만 영남, 호남 지방에는 돌로 만든 장승도 많이 있으며, 지역과 역할에 따라 장승의 이름과 형태는 더욱 다양합니다. 허나 돌장승의 경우에는 대체로 한 쌍이 아닌 하나만 우두커니 선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공이 비교적 용이해 정형화된 목재 장승보다 그 형태가 다양하고 개성있습니다.
목재 장승도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다 뿐이지 마을마다 직접 깎아 만들던 장승은 각 마을마다 모양이 달랐습니다. '장군'이라 이름 지어 부르는 만큼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서서 악귀를 쫓고 액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승은 마을의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 역할도 겸했는데요. 실제 거리와 위치를 적어 노표 역할을 겸하여 노표장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드라마 '악귀'에서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노표장승을 이용해 귀신이 성불하지 못하고 마을에 머물도록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인 민속학자 염해상 교수가 피 묻은 장승을 도끼로 베어 내어 이를 해결하기도 하죠.
피리를 부는 벅수 / 우리 옛돌박물관 소장
그렇게 현재는 보편적으로 장승이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지만, 사실 장승은 원래 역참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하세워진 이정표 역할의 푯말이었습니다. 나라에서 세우고 관리하였던 것으로 본래는 민속 신앙과는 다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역참제도 또한 1895년 폐지되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민속 신앙이었던 '벅수'를 깎아내리기 위해 이를 장승과 하나로 합쳐 표준말로 지정, 발표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벅수가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한정적으로 장승을 부르는 말 정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에는,- <하늘 아래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하였고,- '지하' 세계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이라 한다.>라고 기록하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벅수 또한 귀신과 액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신을 형상화한 구조물입니다. 마을의 구전설화와 민중의 정서가 반영되어 예술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역사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벅수는 장승과 다르게 남녀가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그 기원 또한 불교의 '화엄경'에 나오는 '법수보살'에 두고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그에 따르면 장승에 새겨진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경우 음양오행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생긴 명칭이며, 앞에 인용된 기록에 따라 지하여장군을 지하대장군 혹은 천하대장군을 천하남장군 등으로 바꿔 표현하는 쪽이 바람직 하다고 합니다. 기존 명칭은 현대적인 관점으로도 조금 차별적이기도 하죠.
장승과 벅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벅수와 장승은 본래 그 역할이 달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이유로 지금은 형태와 역할에 유사성을 가진 유산이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성주신, 집안을 지키는 가장 큰 어르신
상량문과 상량식, 2017 한옥박람회 / 영상 월간한옥
성주신은 가정에서 모시는 대표적인 신으로 집의 건물을 수호하며 가신 중에서도 맨 윗자리를 차지합니다.
성주신은 다른 말로 상량신이라고도 하는데, 한옥에 관심이 있다면 상량식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상량식은 건물의 골재가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대들보 위에 대공을 세운 후 최상부 부재인 마룻대(상량)을 올리며 축원문이 적힌 상량문을 함께 봉안하는 의식입니다. 건축의 중심인 마룻대(상량)에 성주신이 머문다 여겨, 마룻대를 올리며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는 영어로 토핑아웃이라고도 하는 제의(祭儀)의 일종으로 건물 건축에서 마지막 단계가 상부 구조에 위치할 때 이에 맞춰 전통적으로 치르는 의식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건물의 구조를 마무리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하죠. 성주신은 모든 가택신을 통솔하고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 중에서도 어르신으로 여겨집니다. 성주신이 없으면 여러 가택신 사이에 균형이 잡히지 못해 분란이 일어나 곧 집안의 재앙으로 이어진다고 여겼습니다. 유교적인 가치관이 드러나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성주 /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가신(家神)들 가운데 집의 건물을 지키는 성주의 신체. 가장자리를 잘개 자른 한지를 여러 겹 포개어 둥글게 만들고, 그 중심부에 쌀 몇알을 한지로 싸서 매달아 놓음. 나뭇가지로 대를 만들고 한지를 여러 가닥의 흰 무명실로 매듭을 두껍게 하여 연결한 것
가정에서는 성주신을 모시기 위해 집을 새로 지으면 성주단지를 새로 마련하고 성줏굿을 통해 성주신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성주단지에는 매년 10월 수확한 햅쌀을 채워 넣는 등 제법 세심하게 모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공예 작품으로 자주 보이는 '모시명태' 또한 말린 명태인 북어에 실타래를 감아 걸어놓는 것으로 성주신을 모시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외에서 성주신의 신체는 한지에 모시기도 하며 별도의 신체 없이 '건궁성주'라 하여 별도로 신체를 모시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만영화인 '신과함께 2 - 인과 연'에서 이제는 헐리웃 배우이자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고 있는 마동석 배우가 성주신으로 등장했었죠. 가주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을 가진 성주신이었는데요. 보이지는 않지만, 마동석 배우 같은 성주신이 집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할 것 같습니다.
월간한옥 뉴스레터 54호
종묘 / 사진 월간한옥
여름도 어느새 끝자락에 닿고, 길어질 것 같은 올해의 추석 연휴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추석은 한가위라고도 부르며,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추석은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는 가을 추수를 앞두고, 조상을 비롯한 여러 신앙적 대상에게 감사와 기원을 보내는 기간입니다.
현대에는 그 문화가 많이 바뀌어 명절 때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민속신앙과 풍속적인 요소가 우리 삶에 남아있습니다. 추석 외에도 설날에는 간소하게나마 떡국을 챙겨 먹고 복날에는 삼계탕뿐만 아니라 대체제로 치킨을 비롯한 닭요리와 각종 보양식을 즐깁니다. 과거에는 그 기원이나 의미를 모른 채로 따라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 으레 하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만, 알게 될수록 문득 과거에 어른들을 따라나섰던 성묘나 제사의 양식이 이해되며 다시금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난 '월간한복 뉴스레터'를 통해 드라마 '악귀'를 시작으로 무속신앙과 한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드라마 '악귀'는 악귀에 씐 여자와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민속학자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민속학의 주요 요소인 무속신앙의 다양한 양식과 설화 등을 활용한 설정이 드러나는데요. 무속신앙은 민간의 종교의식으로 지금보다 과거에는 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존재했으며, 복날 등의 세시풍속 등을 통해 여전히 우리 삶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요소는 드라마 속 이야기가 더 가깝고 흥미롭게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하죠.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민속신앙의 공간, 조형적 요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드라마 '악귀' 속 덕달이 나무 / 사진 SBS
의령 성황리 소나무 / 사진 문화재청
과거에는 지역 공동체의 색이 강했습니다. 하여 마을마다 믿는 신이 있으며 마을의 입구나 경계, 오래된 나무 등을 중심으로 무속신앙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악귀>에서는 어린아이의 시신을 관 대신 독에 담아 매다는 '덕달이 나무'가 나옵니다. 네 갈래로 넓게 뻗은 영험한 분위기의 소나무는 실제 경남 의령군 천연기념물인 의령 성황리 소나무로 마을의 서낭신이 머무는 서낭나무로 여겨온 것입니다. 성황리 소나무와 30m 정도 떨어진 곳에 다른 소나무가 있는데,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으면 크게 기뻐하고 축하일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실제로 나무 옆에 설치된 문화재 안내판에는 '두 가지가 맞닿았던 1945년에 광복이 되었다'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을 모시는 곳으로 마을 입구나 고개에 자리했습니다. 도시의 경계이자 영엄한 느낌을 주는 상징적 공간으로 지역마다 그 명칭이 조금씩 달라 성황당, 할미당, 천왕당,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형태에 있어서는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덤이나 자연 암석, 신목으로 여겨지는 서낭목(서낭나무, 당산나무), 제단 혹은 당집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돌과 나무 같은 자연적 요소에 신이나 정령이 깃들었다고 여기는 신목 샤머니즘부터 제단이나 당집처럼 구성과 양식을 갖춰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낭당에서는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가뭄이나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도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나무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설화와 기원,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단군신화에는 신단수가 있으며, 유대교의 세피로스의 나무, 북유럽의 위그드라실 등이 있죠. 조선시대 무속신앙에서는 이를 서당목, 서당나무, 당산나무 등으로 불러왔으며 주로 느티나무, 팽나무, 돌메나무, 음나무, 회화나무, 소나무가 있었죠. 마을의 서당목은 가장 크고 굵은 나무인 경우가 많았고 아직까지도 천연기념물로 등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서낭목에는 오색의 천이나 종이오라기, 머리카락 등을 거는 풍속이 있으며 이는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서낭당
당집은 비교적 근대까지 존재하며 과거에는 보통 초가집이었으나 현대까지 남아있는 당집은 그 재료가 나무에서부터 벽돌, 콘크리트로 지어진 것까지 있습니다. 보통 네모반듯한 좌우 한 칸 규모로 정면의 문을 들어서면 각종 신체를 모시는 제단이 위치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부는 제단 뒤에 무신도(巫神圖) 같은 그림이 놓여져 있기도 하죠. 제단에는 초나 향을 피우고 음식을 올려 제사를 지냅니다. 당집은 날씨와 계절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나 규모가 비교적 작아 근대에 오면서는 당집의 규모를 크게 짓거나 내부에 수도와 난방 시설을 두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여타 문화와 마찬가지로 무속신앙 또한 지역별로 그 명칭과 양식, 형태가 각기 다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는 독특한 무속신앙이 자리 잡은 지역으로 제주 지역에서만 1만 8천여 명의 신을 모셨으며, 심방이라 부르는 육지의 무당과 같은 무속인이 존재했습니다. 그만큼 제주에는 많은 당집 또한 존재했는데, 제주의 풍속을 꼼꼼히 그려놓고 기록한 조선시대의 청백리 목사 이형상이 '음사(陰祠)'라는 이름 아래 당집들을 부숴버리며 소실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석조문화가 발달한 제주에는 돌담과 돌하르방을 비롯해 무덤 근처에 세워 두는 석인상인 동자석 등 고유한 민속신앙과 자연환경에 맞는 조형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집
드라마 '악귀'에서는 나무와 당집처럼 마을의 중심이 되는 무속신앙의 공간인 서낭당을 구성하는 요소뿐만 아니라, 집 대문이나 어귀 그리고 서낭목에도 걸어두는 '금줄'도 극을 전개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새끼줄은 동북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발견되는 샤머니즘 문화이지만 한국에서는 짚으로 꼰 새끼줄을 금줄로 사용하며, 보통의 새끼줄은 오른쪽으로 꼬아 쓰지만 금줄로 사용되는 새끼줄은 왼쪽으로 꼬아 씁니다. 금줄은 귀신과 액을 막는 것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고추, 솔잎, 숯 등을 꼬임 중간에 매달아 쓰기도 하며, 이는 신앙적인 의미도 있지만 갓난아이가 있음을 외부에 알리고 외부인의 출입을 삼가 병균에서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집, 장독 등에 사용되었던 금줄
드라마 '악귀'에서는 악귀와 관련된 물건을 금줄로 묶어 땅에 묻음으로써 그 기운을 억제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함경도에서는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릴 때 물건에 붙은 악귀를 떼어내기 위해 물건에 금줄을 매어 던져 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구산영 또한 악귀가 찾아오는 저녁 시간에 악귀를 막기 위해 방 전체에 금줄을 두르는 방법을 쓰기도 하죠.
동북아시아에서는 새끼줄을 무속신앙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또 세계적으로 줄이 결계, 봉인 등을 상징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벼농사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경주 / 사진 월간한옥
이번 여름호 N.36 는 <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숙박문화와 쉼, 여행에서 발견한 한국적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월간한옥은 한국적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매호 관련된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적 정체성을 담은 숙박 시설, 혹은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경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의 도시로, 신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 풍부하게 자리 잡았으며, 그 주변을 따라 늘어선 한옥이 이루는 풍경이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경주 황리단길에 자리한 한옥 소요재는 '마당'을 중심으로 한옥이 가진 정체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여관>은 여러 공간과 함께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전합니다.
'소요재'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높은 곳에서 보면 한옥의 기와와 기와가 파도처럼 이어져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경주 황리단길, 사정동 골목에 위치한 '소요재' 는 1973년 지어진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한옥 스테이입니다.
소요재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요소는 '마당' 이 있다는 점입니다. 소요재는 남동향으로 지어진 'ㄱ'가 구조의 한옥으로 건물과 담에 의해 형성된 작은 마당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마당은 자연을 뜻하며 마당(자연)-집-사람이 연결되어 비로소 하나가 되고 마당이 소통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소요재에는 마당 즉,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쪽마루가 있습니다.
외부와 내부를 단절시키는 역할인 대문이 열리면 외부와 마당 집 안의 공간이 사람으로 인해 소통되어 연결되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열린 대문으로 한옥을 바라보면 공간이 중첩되어 깊이 있게 흐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머무름 자체가 쉼이 되는 공간, 소요재에서 경주 여행에 풍요로움을 더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진 소요재
소요재에는 월간한옥 N.36 <여관>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숙박문화와 쉼에 대한 한국적 정체성을 월간한옥의 글과 사진으로 함께 누려 보세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공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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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은 한국의 대표적인 토테미즘으로 마을의 수호신 여겨 믿고 받들던 조각상입니다. 지금에야 유물 취급을 받지만 20세기 초에는 장승이 없는 마을이 드물 정도로 장승이 많았습니다.
장승은 천하대장군이라고 부르는 남성형 조형물과 지하여장군이라 부르는 여성형 조형물이 짝을 이뤄 마을의 경계나 동서남북 오방에 세워집니다. 남장승은 머리에 관을 쓰고 눈을 부릅뜨고 덧니와 수염을 달고 있으며 여장승은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찍고 몸체를 청색으로 채색하기도 합니다. 보편적으로 나무로 만들어 길게 뻗은 장승이 알려져 있지만 영남, 호남 지방에는 돌로 만든 장승도 많이 있으며, 지역과 역할에 따라 장승의 이름과 형태는 더욱 다양합니다. 허나 돌장승의 경우에는 대체로 한 쌍이 아닌 하나만 우두커니 선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공이 비교적 용이해 정형화된 목재 장승보다 그 형태가 다양하고 개성있습니다.
목재 장승도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다 뿐이지 마을마다 직접 깎아 만들던 장승은 각 마을마다 모양이 달랐습니다. '장군'이라 이름 지어 부르는 만큼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서서 악귀를 쫓고 액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승은 마을의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 역할도 겸했는데요. 실제 거리와 위치를 적어 노표 역할을 겸하여 노표장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드라마 '악귀'에서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노표장승을 이용해 귀신이 성불하지 못하고 마을에 머물도록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인 민속학자 염해상 교수가 피 묻은 장승을 도끼로 베어 내어 이를 해결하기도 하죠.
피리를 부는 벅수 / 우리 옛돌박물관 소장
그렇게 현재는 보편적으로 장승이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지만, 사실 장승은 원래 역참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하세워진 이정표 역할의 푯말이었습니다. 나라에서 세우고 관리하였던 것으로 본래는 민속 신앙과는 다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역참제도 또한 1895년 폐지되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민속 신앙이었던 '벅수'를 깎아내리기 위해 이를 장승과 하나로 합쳐 표준말로 지정, 발표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벅수가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한정적으로 장승을 부르는 말 정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에는,- <하늘 아래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하였고,- '지하' 세계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이라 한다.>라고 기록하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벅수 또한 귀신과 액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신을 형상화한 구조물입니다. 마을의 구전설화와 민중의 정서가 반영되어 예술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역사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벅수는 장승과 다르게 남녀가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그 기원 또한 불교의 '화엄경'에 나오는 '법수보살'에 두고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그에 따르면 장승에 새겨진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경우 음양오행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생긴 명칭이며, 앞에 인용된 기록에 따라 지하여장군을 지하대장군 혹은 천하대장군을 천하남장군 등으로 바꿔 표현하는 쪽이 바람직 하다고 합니다. 기존 명칭은 현대적인 관점으로도 조금 차별적이기도 하죠.
장승과 벅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벅수와 장승은 본래 그 역할이 달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이유로 지금은 형태와 역할에 유사성을 가진 유산이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상량문과 상량식, 2017 한옥박람회 / 영상 월간한옥
성주신은 가정에서 모시는 대표적인 신으로 집의 건물을 수호하며 가신 중에서도 맨 윗자리를 차지합니다.
성주신은 다른 말로 상량신이라고도 하는데, 한옥에 관심이 있다면 상량식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상량식은 건물의 골재가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대들보 위에 대공을 세운 후 최상부 부재인 마룻대(상량)을 올리며 축원문이 적힌 상량문을 함께 봉안하는 의식입니다. 건축의 중심인 마룻대(상량)에 성주신이 머문다 여겨, 마룻대를 올리며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는 영어로 토핑아웃이라고도 하는 제의(祭儀)의 일종으로 건물 건축에서 마지막 단계가 상부 구조에 위치할 때 이에 맞춰 전통적으로 치르는 의식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건물의 구조를 마무리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하죠. 성주신은 모든 가택신을 통솔하고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 중에서도 어르신으로 여겨집니다. 성주신이 없으면 여러 가택신 사이에 균형이 잡히지 못해 분란이 일어나 곧 집안의 재앙으로 이어진다고 여겼습니다. 유교적인 가치관이 드러나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성주 /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가신(家神)들 가운데 집의 건물을 지키는 성주의 신체.
가장자리를 잘개 자른 한지를 여러 겹 포개어 둥글게 만들고, 그 중심부에 쌀 몇알을 한지로 싸서 매달아 놓음.
나뭇가지로 대를 만들고 한지를 여러 가닥의 흰 무명실로 매듭을 두껍게 하여 연결한 것
가정에서는 성주신을 모시기 위해 집을 새로 지으면 성주단지를 새로 마련하고 성줏굿을 통해 성주신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성주단지에는 매년 10월 수확한 햅쌀을 채워 넣는 등 제법 세심하게 모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공예 작품으로 자주 보이는 '모시명태' 또한 말린 명태인 북어에 실타래를 감아 걸어놓는 것으로 성주신을 모시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외에서 성주신의 신체는 한지에 모시기도 하며 별도의 신체 없이 '건궁성주'라 하여 별도로 신체를 모시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만영화인 '신과함께 2 - 인과 연'에서 이제는 헐리웃 배우이자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고 있는 마동석 배우가 성주신으로 등장했었죠. 가주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을 가진 성주신이었는데요. 보이지는 않지만, 마동석 배우 같은 성주신이 집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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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Kyoungcheol Park
뉴스레터 편집장 Editor in Chief
이경근 Gyunggeu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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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빈 Sungbin Yoon
권혜리 Hyeri Kwon
송윤하 Yoonha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