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47] 문화재로 60년, 이제 국가문화유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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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한옥 뉴스레터 47호

  • 문화재와 국가유산, 무엇이 다르고 왜 바뀐 걸까?
  • 늘 해오던 일이지만 정말 필요할까? 유산 지정을 반대하는 목소리
  • 강릉 산불로 인한 문화유산 소실과 고민의 필요성 


* 지난 뉴스레터 #46의 마지막 기사인 '월간한옥 N.31 진주 순실크' 관련 기사에서 사진 각주가 ''진주 순실크'가 아닌 전주 순실크'로 오표기 되었습니다. 독자분과 취재처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ㆍ문화재와 국가문화유산, 무엇이 다르고 왜 바뀐걸까  

사적 제6호 경주황룡사지 / 사진 문화재청

 

2022년 4월 문화재 명칭 및 분류체계의 전면적인 개선이 확정되었습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래 60년 만의 일입니다.


명칭은 문화재에서 유산, 통칭 국가유산으로 변경되었으며 분류체계는 유형·무형에서 문화·자연·무형으로 개편되었습니다. 더불어 그동안 관리 사각지대에 있었던 비지정문화재에 대해 목록유산이라는 개념을 신설하여 포괄적인 보호 체계와 법적 개념,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문화재'라는 명칭 및 분류체계가 1950년 제정된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을 원용한 것으로 유물에 대한 재화적 성격이 강하며 그로 인한 의미상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문화재'라는 통칭은 일본과 한국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연물과 경관, 사람 등을 문화재로 지칭하는 것은 부적합하며, 나아가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준과 눈높이를 맞추고 시대변화와 미래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유네스코 유산 분류체계: 세계유산 / 인류무형문화유산 / 세게기록유산으로 분류하여 국제적으로 문화재 개념보다 유산(Heritage) 개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국민 설문조사(3.18~22 / 전국 만 19~69세 성인 남녀 1,000명) 결과 명칭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76.5%, '유산' 개념으로 변경하는 데에는 국민 90.3%가 찬성하였습니다. 또한 통칭 용어로서 '국가유산'이 적절한가에 대한 질문에도 국민 87.2%가 찬성하였지만, *전문가는 52.5%가 동의하였습니다.


*문화재 전문가 설문조사: 3.18~22 / 문화재위원회·무형문화재위원회·수리기술위원회·고도보존육성중앙심의위원회·역사문화권정비위원회 소속 위원 및 전문위원 404명)


ㆍ유산 지정에 대한 또 다른 목소리 

서울송파 풍납토성 출토 심발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법과 체계를 만들어 문화유산을 보호한다는 것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응당한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이유에서 유산 지정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 또한 존재합니다.


가장 먼저 유산 지정으로 인한 강제적 개발 금지에 대한 우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풍납토성과 석촌동 고분군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얼마 되지 않는 한성백제의 유적지이지만, 등재 가치가 있음에도 주변 개발 제한을 우려한 반대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소도시가 아닌 서울 한가운데 위치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경주의 황룡사 복원, 부산의 복천고분도 유산의 관리, 등재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 차이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개발 문제 외에도 유산 지정의 가치 판단에 차이도 있습니다. 일본의 군함도(하시마섬)의 경우 전쟁유산으로 국가, 사회간 갈등이 존재합니다. 이와 관련한 일본의 입장에 유네스코가 강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전쟁유산에 대해 부의유산, 어두운 유산 혹은 불편문화유산이라는 유산의 한 부분으로 어둡고 부정적이며 불편함을 느끼는 문화유산이지만 역사적인 증거로서 보존의 필요성을 말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국가 유산이라는 통칭의 한계점으로, 국가 및 정부로 귀속된 유산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명칭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는 의견도 있으며 이에 협회·단체나 조직이 소장한 유산은 '국가유산'보다 '문화유산'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ㆍ강릉 산불과 조용히 소실된 비지정문화재 

상영정 / 사진 문화재청


지난주 강릉에 큰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최근 전국적으로 산불 발생이 눈에 띄게 증가한 가운데, 화재 대응 최고 단계인 3단계가 내려질 만큼 큰 화재였습니다.


8시간의 화재 동안 축구장 약 530배의 삼림과 인명, 건축물 등의 피해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바람이 잦아들고 비가 내리면서 불길은 잡혔지만,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최근 더 잦아진 산불의 발생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크다고 하는데요.


문화재 또한 산불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경포대의 현판 7개는 떼어져 인근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나, 주변 정자 중 하나인 상영정은 전부 소실되었습니다. 또 다른 유형문화재인 방해정 역시 불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고, 인근 고찰인 인월사도 불에 타 전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여러 지정문화재 외에도 강릉 산불로 인해 소실된 비지정문화재는 무려 360여 곳에 달합니다.

 

인월사 관음전 현판 / 사진 문화재청


18년 전, 2005년에도 양양에서 시작된 산불이 낙산사에 옮겨붙어 복원 작업을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화재 후 소실된 문화재는 긴 복원 과정을 통해 원래의 모습과 가깝게 재생되지만, 이미 소실된 순간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왔던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작년 4월 문화재 명칭 및 분류체계 개선을 통해 비지정문화재의 보호, 관리 체계 마련을 시작으로 올해에는 국가유산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 규정'이 추가되었습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유산에 대한 시각이나 가치, 관리 체계도 역시 변화해 가야 할 것이며, 여러 이해관계와 의견의 대립이 발생할 것입니다.


언어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입니다. 어떻게 칭하느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시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유산 지정과 관리, 그 가치에 대한 논의가 더 나은 방향을 위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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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픽스 정성혁 대표 인터뷰
<수백만개의 점이 만드는 문화재>

돈암서원 응도당 3D 실감모형


2008년 숭례문과 2019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로 긴 역사 속 산물의 손실은 우리에게 큰 안타까움을 안겨 줬다. 다행히 숭례문과 노트르담 성당 모두 화재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3D 스캔 자료가 있어 정확한 수치를 확인할 수 있어 더욱 빠르게 복원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 두 문화재 복원 과정에 사용된 첨단 기술 '3D 스캔'은 문화재 복원은 물론이고 역설계, 품질관리, 의료, 패션, 3D 실감 콘텐츠 제작 등 다용도로 쓰이는 기술이다. 3D 스캔은 대상 물체의 3차원 형상 정보를 획득해 점군데이터(pointcloud)로 불리는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디지털자료를 생성한다. 점 간격이 좁을수록 X, Y, Z의 3차원 좌표 개수가 많아져 정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다. 과거에는 건축 실측 시 건물 주위로 비계를 쌓고 줄자로 하나하나 측정해 도면을 만들었지만, 3D 스캔 기술의 등장으로 이제는 정밀한 측정 데이터값으로 컴퓨터에서 3차원 설계 도면을 만들 수 있다.  



돈암서원 응도당 3D 실감모형

 

3D 스캔 전문기업 테라픽스 정성혁 대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사진측량을 시작해 이 분야에 3D라는 신기술이 들어온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사진측량은 대상물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정량적 측정과 정성적 판독을 통해 대상물의 3차원 정보를 취득하는 측량 방법으로 3D 스캔의 시초가 된다. 특히 정성혁 대표는 3D 스캐너에서 얻어진 측점 사이의 공간을 사진측량 기법을 적용해 채우고, 고해상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이미지로 정확한 색과 질감을 입혀 더욱 정밀하고 사실적인 3D 실감 모형을 만들어 낸다.


서울 배렴가옥 3D 실감모형


라이다(LiDAR)로도 불리는 3D 스캐너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2000년대 초반에는 주로 조선소나 발전소 등의 건축, 토목, 기계, 중공업 관련 실측 작업이 주를 이뤘다. 지금은 문화재 분야에서도 오래된 한옥, 근대 건축물, 석조문화재, 미술 작품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3차원으로 실측해 기록하거나, 증강현실 콘텐츠 등으로 활용하는 신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테라픽스의 정성혁 대표는 문화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 오면서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로 관리받지 못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전국 곳곳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서울 배렴가옥 3D 스캔 점군데이터 (정면, 평면)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 외에도 보존해야 할 문화재가 많은데 현실은 외면받는 상황입니다. 허물어지고 없어지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그런 대상을 찾아서 개인적으로 아카이브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쌓여 무척 많은 자료가 됐는데 이들 자료를 모아 기록물로 남기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분야는 아직 많습니다. 무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그리고 기념물 등을 정밀한 3차원 데이터로 기록할 수도 있겠죠.” 


사람, 생물, 건축물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고 그 생명을 잇는 방법으로 기록한다. 글로 쓰고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던 기록은 현존하는 모습 그대로 세세하게 남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역사를 지키고 발견하는 데 더욱 많은 공으로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