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63]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서 유대의 가능성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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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한옥 뉴스레터 63호

  • 문화유산 vs 도시개발, 가치의 충돌
  • 제사문화에서 유대의 가능성을 찾다
  • 원묘총분능, 묘를 일컫는 단어들
  • 월간한옥의 추천 전시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



문화유산 vs 도시개발, 가치의 충돌

김포장릉 멀리 보이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 사진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캡처 


건축 공사나 도시 개발 과정에서 문화유산이 발굴되어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지난해 말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포장릉과 일명 '왕릉뷰 아파트' 사이에서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김포장릉(章陵)은 16대 인조의 부모인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이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파주 장릉과 계양산의 일직선상에 위치한 경관이 돋보이는 문화유산입니다. 그러나 2021년 김포 장릉의 앞에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문화재청과 건설사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김포장릉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35조에 근거하여 문화유산 보존 지역 반경 500m 안에 높이 20m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는 심의를 거쳐야 한다며 이를 어긴 건설사를 고발하고 공사중지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건설사는 경기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서는 문화유산의 보존 범위를 반경 200m로 규정하고 있으며, 해당 아파트는 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항소심을 제출했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건설사의 최종 승소였습니다. 판결의 이유로는 해당 아파트 건설 전부터 이미 다른 건축물로 전망이 침해된 상태였다는 점, 골조가 완성된 아파트를 철거했을 때의 이익보다 입주민과 건설사가 입을 피해가 막대하다는 점 등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기본권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문화재청이 이토록 지키고자 했던 장릉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월간한옥 뉴스레터 63호에서는 제사 문화와 관련된 우리 유산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국의 제사, 형식이냐 본질이냐

기산풍속도 <제사지내는모양>, 1890년대 /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이제 묘지에 매장하는 일은 매우 드물어져 거의 문화재로서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제례 문화도 점차 간소화되고 있죠. 그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사회가 개인화 된 탓이 큽니다. 종교관이 다양해지며 개인의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나, 명절 특수의 가사노동과 친인척 간, 세대 간 갈등, 혐오시설이라는 식 같은 것들이 그 필요성을 잃게 했죠. 납골당이나 묫자리를 구하는 일도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혼밥, 혼술이 늘어나고 명절에 얼굴 보기도 힘든 마당에 조상님이라니, 꿈에서도 뵌 적 없는 이들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쓰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조상님의 덕이 스펙 한 줄을 채워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성묘 문화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대부분 시신을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시기 때문이죠. 사실 화장문화는 일본식에 가깝습니다. 유교는 본래 매장의식을 합니다. 하지만 전통 유교식 장례절차는 19개에 달할 정도로 복잡하고 체계적인 편이며, 초종(初終)부터 길제(吉祭)까지 총 27개월에 걸쳐 진행하죠. 현대에는 일부를 생략해 간소화하였지만 대체로 삼일장 형태를 유지하며 장례식으로 운구하여 염습과 입관 후 성복과 조문이 이뤄지며 발인과 화장으로 마무리합니다.


제사는 여전히 존재하긴 하지만 그 절차나 체계에 대한 이해가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홍동백서나 어동육서같이 차례상을 차리는 구조는 실제로 그 문헌이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있지는 않으며, <주자가례>나 <세종실록오례> 등을 통해 음식의 종류나 대략의 진설도가 나와 있긴 하지만 오늘날과는 많이 다릅니다. 제사의 주요 절차로 영혼을 위해 향을 피우고 육신을 위해 음복을 하지만 이러한 의미 또한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제사의 형식이 아닌 본질을 생각하며

<가가례>, 아름지기, 2018 / 사진 월간한옥 


언젠가부터 제사는 바쁜 일과 속에 회사에 둘러대듯 얘기해야 하는 일이, 무리한 가사 노동이 됐습니다. 성공한 이와 경제 사정이 어려운 이가 시선을 피하고 시집 장가를 못 갔거나 취업하지 못한 이들은 피하고 싶은 자리가 되었죠. 제사상에 올라간 음식 대부분은 식은 채로 며칠이 지나 결국 버려지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지만 이런 제사 문화의 소멸이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의 상실, 개인주의와 갈등의 심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제사는 죽음과 맞닿아 있어 다소 엄숙한 느낌을 주지만 마다가스카르의 모습처럼, 조선왕조 의례를 모아 둔 <국조오례의>에서는 제례를 길례의 구분에 두어 행복하고 기쁜 의식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에야 제사 때 먹는 음식이 별식처럼 되었지만,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던 시절 고기와 쌀부터 과일, 과자까지 먹을 수 있는, 기다려지는 축제 같은 날이었죠. 동네에 음식 냄새를 풍기며 과식하고 때로는 배탈도 나는 날이었습니다.

 

제사를 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입니다. 제사 문화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춘 형태의 변화가 필요하죠. 죽은 자에 대한 추모도 물론이지만 제사를 통한 관계 형성의 본질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체입니다. 세대와 가족이 화합하며 즐기는 행사가 되어야 하죠. 치우친 가사 노동이 아닌 먹을 음식을 함께 만드는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비교하기보다는 응원하고 위로하며, 장소와 양식 등 고정되었던 체계를 조금 느슨하게 바꿔 갈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제사 문화는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사라질 기로에 서있습니다. 어쩌면 이는 제사 문화의 본질이 곡해되고, 형식적인 형태가 강조되어 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맛있는 음식과 좋은 만남, 즐거운 대화, 특별한 의식이 있는 가족 행사로서 조금은 유연하게 변화하며 유지될 수 있기를 바라며, 다가오는 설에는 조금 더 새롭고 즐겁게 즐길 방법을 다 같이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원, 묘, 총, 분, 능, 모두 묘를 일컫는 단어들

경주 황오동 고분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신라고분발굴조사단 건물 / 사진 월간한옥


 

고구려 무용총과 백제의 무령왕릉, 역사 수업 시간에 배웠던 수많은 무덤들의 끝 글자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화재청은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무덤에 대한 여러 가지 명칭을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족들의 무덤은 묻히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능, 원, 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능(陵)은 통상 국왕과 왕후,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을 말하며,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과 같이 묘(墓)라 불립니다. 이외에도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으나 벽화나 금관처럼 다른 무덤과 특별하게 구분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무덤을 총(塚), 무덤 주인도 모르고 다른 무덤과 구별되는 큰 특징도 없는 경우를 분(墳)이라고 부릅니다.


문화유산의 도시로 알려진 경주는 능부터 분까지 다양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경주 한 바퀴를 돌며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월간한옥의 추천 전시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디지털 시대 속 미술작품은 일상에서 접하기 쉽게 다가옵니다. 피드를 넘기며, 작품을 검색하며 만난 미술작품을 이미지로 인식하였지만, 원화로 전시장에서 보면 이미지를 넘어 작품의 크기, 전시장의 조도 등 분위기로 전시를 읽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장욱진도 그러합니다.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서는 ”나는 정직하게 살아왔노라.”라는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창작에 전념했던 장욱진의 약 60여 년간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조망합니다. 바래진 도배지 느낌의 벽과 창을 넘어 보이는 작은 작품들은 장욱진의 아뜰리에 들어와 그의 고백의 산물들을 듣는 것 같습니다.


<가족>, 장욱진, 1955 / 사진 월간한옥 


특히 이번 전시는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인 '가족'(1955)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64년 반도화랑에서 열었던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게 판매된 후 60년간 행방을 알 수 없었다가 일본의 한 창고 벽장 속에서 발굴되었습니다. 판매하였던 작품이 아쉬워서 다시 그릴 정도로 장욱진에게 애착이 있던 《가족도》를 전시를 통해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 전시제목 :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 전시일정 : 2023-09-14 ~ 2024-02-12
  • 전시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층, 1·2전시실, 3층, 3·4전시실 

예술과 기술, 그리고 한국적 정체성

"백남준에 대해 아는 것을 두고 따지자면,

한국은 백남준 선생님의 고국이지만 실은 변방에 가까워요."


월간한옥 38호 <백남준>, 이정성 엔지니어 인터뷰 중에서


백남준 작가는 미디어아트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졌지만, '미디어'는 그가 사용했던 재료에 불과할 뿐, 그 안에는 철학과 사상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백남준 작가는 작품의 형태와 재료 측면에서 주로 조명을 받아왔으며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고 했는지는 비교적 덜 주목받아 왔습니다.


1984년 백남준이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대한 메시지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한 지 40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작품에서 위성방송을 통해 전 세계 예술가가 동시에 연결되는, 기술로 인한 행복과 평화를 세상에 보였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24년, 우리는 AI를 비롯해 다시 한번 기술 사회로서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이번 호를 통해 <백남준>의 사상과 철학을 살펴보고 미래에 대한 단서를 얻고자 한다. 이는 마치 한옥 건축물인 정자처럼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있어야 하는 건물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모으고 연대와 소통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월간한옥 38호 <백남준>에서는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인간으로서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기술과 예술, 그리고 인간이 조화되는 미래에 대한 단서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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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Publisher

박경철 Kyoungcheol Park


뉴스레터 편집장 Editor in Chief

이경근 Gyunggeun Lee


기자 Editor

윤승연 Seungyeon Yoon

송윤하 Yoonha Song

신정민 Jeongmin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