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복 뉴스레터 #10
- 👀 톺아보기 : 해외 귀빈부터 스타까지, 한복을 입다.
- 👗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한국 밖의 한복
- 🎙️ 한국적 정체성을 담는 새로운 시선, IISE
- 📢 전시 소식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 📌 Editor's Pick <효미당 양갱>
등잔 밑이 어둡다? 한국적 정체성을 인식하는 다른 시선 |
미국 메릴랜드 주 코리아 타운 일주문 / 건축 · 사진 월간한옥
2023년 한국의 재외동포 수는 193개국에 7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년간 출국하는 내국인(아웃바운드)도 1천만 명에 육박합니다. 국가간 경계는 갈수록 유연해지고 교류는 활발해져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고 있죠. 그렇게 해외에 뿌리를 내린 한국 문화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무엇으로 한국 문화와 닮아있으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제는 해외 활동을 통해 한국적인 것이 먼저 알려져 이슈가 되고, 그 이후에 한국에 전해져 유행이 되는 소위 '역수입'이라 부르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이죠. 우리가 재외동포 사회에 관심이 적은 것에 비해 재외동포 사회의 현지 문화나, 재외동포의 활동을 통해 국가적 자부심을 가질 때도 있고요. 한국에서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활동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전통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되레 이런 한국적 정체성의 발견은 내부에서 이뤄지기보단 한국 외부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하죠.
오늘은 한국의, 혹은 한국 사람이 풀어내는 전통이 아닌, 조금 다른 문화의 시선으로 풀어낸 한복을 살피고자 합니다. 한국에 살아온 한국 사람일수록 때로는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함께 발견해 봅시다.
👀 톺아보기 : 해외 귀빈부터 스타까지, 서울의 유년시절을 담아 런던에서 풀어낸 한국적 정체성을 입다. |
미국 백악관 국빈 만찬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카말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 사진 미스 소희 인스타그램
지난해 백악관에서 진행된 국빈 만찬에서 미국 부통령 카말라 해리스는 벌룬 소매와 화려한 허리 장식이 강조된 파란색 블라우스를 착용했습니다. 평소 입던 무채색의 스타일과는 사뭇 달라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의상은 '미스 소희(Miss Sohee)' 제품으로 한국 출신의 디자이너 박소희가 전개하는 브랜드입니다.
돌체앤가바나가 후원한 미스 소희 F/W 2022 컬렉션 / 사진 Sí Fashion 유튜브
박소희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런던으로 넘어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줄곧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과 전통자수를 사랑하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했지만, 미스 소희의 디자인에는 한국적이고 빈티지한 스타일이 매력적으로 녹아 있는데요.
2022년 돌체앤가바나의 후원으로 선보인 컬렉션은 한국의 민화를 주제로 했으며 호랑이, 까치, 해와 달, 꽃과 산 등의 요소를 활용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테일러 힐과 미국 여배우인 클로이 파인만이 2022년 '멧 갈라(Met Gala)'에 참석할 때 착용하기도 했죠. 그 외에도 박소희 디자이너의 옷은 레드카펫에서 자주 목격됩니다. 202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판빙빙과 메간 폭스가 착용하기도 했죠. 이때 착용된 드레스에는 한국 민화가 떠오르는 무늬와 자개장이 연상되는 장식이 돋보였습니다.
K-피플 90회 "한복의 미를 살리다" 이화 한복 로라 박 대표 편 / KBS America 유투브
'이화 웨딩&한복' 한국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상호는 미국 LA에서 4대째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복점의 이름입니다. 현재는 로라 박(한국명 박이화) 대표가 32년 동안 운영하고 있죠. 그의 외증조할아버지가 평안도에서 원단 장사를 했고, 이어 외할머니가 한복을 짓던 것이 어머니 때에 와서는 전쟁으로 인해 피난길을 따라 종로 광장시장 포목상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후 1985년 캘리포니아로 박 대표가 유학을 오게 되면서 평안도부터 시작된 가업은, 마치 민들레 씨앗이 퍼져 땅에 내리듯, 한반도 멀리 LA에도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한복을 입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는데, 오히려 미국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의 파티 패션으로 한복이 인기라고 합니다. 한복 저고리에 바지나 치마를 믹스매치 하기도 한다죠. 본래 전통 복식은 명절이나 국가 행사, 관혼상제 등에서 그 모습이 오래 남기 마련입니다만, 한국은 이제 명절이나 혼례 때도 전통 복식을 잘 입지 않게 되었죠. 반면에 해외 한인 사회에서는 되레 결혼식과 돌잔치 등에서 여전히 한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유지된 한복 문화가 한류를 따라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죠.
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아래) '파친코' 스틸 컷 / 사진 애플tv+
21년에는 미국 뉴저지주가 10월 21일을 '한복의 날'로 지정하였으며, 올해부터는 11월 22일 또한 김치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뉴저지의 한인 고교생들이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에 맞서 당국을 설득한 것을 계기로 맺어진 결과인 것을 알고 계셨나요. 한복이 많이 보이는 경복궁 일대에서도 한복을 체험하는 것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인 것을 생각하면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정작 한국에서는 '한복의 날'이 체감되지 않을 정도죠. 언젠가 한복입는 한국인은 존재하지 않게 되진 않을까요.
지난해에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파친코'에 대해 미국 일간지인 뉴욕타임스가 작품 속 한복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다룬 기사를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20세기 초 한국인의 일상생활과 세부적인 묘사를 볼 수 있으며 역사를 통해 어떻게 변해갔는지, 인문학적인 발견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한국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임에도 미국에서 더욱 관심을 두고, 깊이 있는 리뷰를 전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이라 궁금증이나 탐구하고자 하는 호기심이 차마 피어나지 못한 탓도 있을 겁니다. 종종 다른 문화를 살아온 이의 눈을 빌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 한국적 정체성을 담는 새로운 시선, IISE |
'IISE' 이태원 쇼룸
IISE(이하 '이세')는 재미교포 2세인 김인규(케빈), 김인태(테렌스)가 2014년부터 전개해 온 패션 브랜드입니다. 올해로 어느덧 10년 차를 맞이한 브랜드죠. 2012년, 김인규, 김인태 대표는 처음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 한인타운에서 삼겹살이나 순두부찌개를 먹어본 것이 전부였지만, 이후 쭉 한국에 머물며 걸음마 떼듯 시작해 어느새 서울과 뉴욕에서 패션위크를 열고 최근에는 이태원 쇼룸을 이전하면서, 한국적 정체성을 고유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이세의 개성이 녹아든 공간까지 멋지게 꾸려냈습니다.
이세는 2014년, 첫 컬렉션을 천연 염색기법을 활용한 가방으로 시작했는데, 인사동에서 마주친 스님의 가방이 멋져, 결국 불교용품점까지 따라가 구매한 일을 계기로 이어진 결과였습니다. 이후로도 이세는 한옥 문살을 모티브로 만든 로고 디자인부터, 한국 장인의 염색을 통한 원단 샘플링, 한지를 섞어 직조한 원단, 그리고 2019년에는 시청에서 목격한 시위대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까지, 차곡차곡 쌓아가며 자신만의 색을 다져왔죠. 이세는 한국적 정체성이 담겨있지만, 고루한 전통성보다는 재미교포 2세라는 배경을 가진 이들이 직접 바라본 한국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담아 되레 신선한 관점과 발견을 보여주는 브랜드입니다.
IISE VOL.1 / NO.1 / 유투브 채널 'IISE SEOUL'
그리고 2023년, 10년 차를 맞이한 이세는 서울에서도 가장 독특한 도시 풍경을 지닌 이태원에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과 함께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평택으로 기능을 이전한 용산 미군기지와 이슬람 사원, 일본인 밀접 지역인 이촌동 등 다국적 문화가 자리잡은 용산에서도 이태원은 그 중심이 되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모습이 섞여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 됐습니다. 특히 여행객뿐 아니라 생활권으로 삼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아 그 문화가 깊이 녹아있죠. 그리고 이태원은 고급 멘션에서 붉은 벽돌집까지 이어지는 건축물의 풍경부터, 스트릿에서 하이앤드 패션까지 이태원은 현재까지도 서울의 그 어느 동네보다도 활발하고 역동적인 곳으로 주목받는 곳입니다. 여러 문화권이 뒤섞이는 용광로 같은 곳, 재미교포 2세와 전통이라는 이세의 정체성과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복궁 기와지붕에서 영감을 받은 스피커 구조물과 모듈식 행거
이번 리뉴얼을 통해서 이세는 장인정신에 중점을 두고 연구 개발한 컬렉션 Vol.1 / No.1 을 런칭했습니다. 기존의 대량생산 라인의 공정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소규모로 전환하며, 시그니처 누비 같은 이세만의 고유한 원단 개발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새로운 쇼룸의 인테리어는 '리파인드(REFYND) 스튜디오'와 협력하였으며, 이세의 컬렉션과 함께 한국 현대 미학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경험하는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쇼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스피커 구조물은 경복궁 기와지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IISE의 시그니처 누비 원단
이번 컬렉션에서도 여전히 누비를 활용한 제품을 발견할 수 있으며, 한복의 여밈의 형태, 복주머니 등을 활용한 디테일 또한 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세는 이런 요소를 전면에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전통적인 요소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과 그로 인해 생겨날 수도 있는 당위성보다도 시각적,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멋지다는 인상을 먼저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죠.
설명의 여부가 제품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좋은 제품은 그 본질이 사용자에게 직관적으로 전해지는 것이죠. 공예품의 미감은 직접 써 봐야 제대로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전통적 요소와 모티브를 전면에 내세우고 설명을 통해 제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봤을 때, 쥐고 사용했을 때 '기분 좋다'는 느낌이 앞서 드는 것 아닐까요.
자연스러운 퇴색의 아름다움을 담은 IISE의 오버다잉 코튼 소재의 캡
이세는 간결하게 표현하지만, 그것을 위해 간결하지만은 않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전통적 기법과 재료의 학습과 활용, 실험, 그리고 장인과의 소통과 협업을 통한 세대 간의 교류까지, 10년 차를 맞이하며 어느덧 이세가 표현하는 한국적 정체성에는 이세다운 면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이어갈 한국을 바라보는 이세의 독창적인 시선과 한국적 정체성의 새로운 발견을 기대합니다.
IISE SNS
📢 월간한복이 추천하는 금주의 전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_전시장뷰 B1 /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한국적 모티브를 동시대 예술언어와 사회문화적 문맥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전시가 있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강서경 작가는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버들 북 꾀꼬리>는 그의 최대 규모 미술관 개인전이라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전시 제목이자 신작 영상의 제목인 <버들 북 꾀꼬리>는 전통 가곡 이수대엽(二數大葉)의 <버들은>을 참조한 것으로, 마치 실을 짜듯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어내던 선인들의 비유를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_전시장뷰 1F /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전시는 조선시대 유량악보인 정간보(井間譜)의 '우물정(井)'자 모양에서 착안한 작품 <정 井>부터 사계의 움직임과 우리 산의 능선을 표현한 영상작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었는데요. 관람을 하다보면 한 폭의 한국화가 3차원으로 펼쳐져 공감각적으로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전시기간 : 2023. 09. 07(목) ~ 12. 31(일)
- 관람시간 : 10:00-18:00 (매표마감 17:30) *휴관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 전시장소 : 리움미술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5길 60-16)
- 관람요금 : 일반 12,000원
- 관람문의 : 02-2014-6901
전시 정보 보러가기
📌 Editor's Pick 전통을 모티브로 일상에 생기를! 월간한복 에디터가 선택한 금주의 아이템을 소개합니다. |
효미당 양갱 세트/ 사진 오아시스 마켓
추운 겨울엔 달달함을 더해야 해요 <효미당 양갱>
겨울이면 해가 짧아지고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햇빛을 볼 때 생성되는 호르몬 세로토닌의 분비량이 줄어들게 됩니다. 세로토닌은 우리의 기분과 행복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서, 많이 분비될수록 더 행복하고 안정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겨울철 붕어빵, 호떡처럼 달콤한 길거리 음식이 당기는 이유는 춥고 흐린 날씨로 인한 우울감을 극복하려는 우리 몸의 생리적인 반응 아닐까요? 이러한 이유로 월간한복 에디터는 겨울에 달달한 음식을 필히 챙겨 먹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며, 요즘 빠져있는 간식을 소개 드리려 합니다. 효미당 양갱은 국내산 농산물을 고집하여 옛방식 그대로 만든 양갱입니다. 고구마, 팥, 단호박, 밤 네 가지 맛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는 밤맛을 가장 좋아합니다. 올겨울은 우리 전통간식으로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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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Publisher
박경철 Kyoungcheol Park
뉴스레터 편집장 Editor in Chief
이경근 Gyunggeun Lee
기자 Editor
신정민 Jungmin Shin
송윤하 Yoonha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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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한복 뉴스레터 #10
미국 메릴랜드 주 코리아 타운 일주문 / 건축 · 사진 월간한옥
2023년 한국의 재외동포 수는 193개국에 7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년간 출국하는 내국인(아웃바운드)도 1천만 명에 육박합니다. 국가간 경계는 갈수록 유연해지고 교류는 활발해져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고 있죠. 그렇게 해외에 뿌리를 내린 한국 문화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무엇으로 한국 문화와 닮아있으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제는 해외 활동을 통해 한국적인 것이 먼저 알려져 이슈가 되고, 그 이후에 한국에 전해져 유행이 되는 소위 '역수입'이라 부르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이죠. 우리가 재외동포 사회에 관심이 적은 것에 비해 재외동포 사회의 현지 문화나, 재외동포의 활동을 통해 국가적 자부심을 가질 때도 있고요. 한국에서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활동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전통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되레 이런 한국적 정체성의 발견은 내부에서 이뤄지기보단 한국 외부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하죠.
오늘은 한국의, 혹은 한국 사람이 풀어내는 전통이 아닌, 조금 다른 문화의 시선으로 풀어낸 한복을 살피고자 합니다. 한국에 살아온 한국 사람일수록 때로는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함께 발견해 봅시다.
👀 톺아보기 : 해외 귀빈부터 스타까지,
서울의 유년시절을 담아 런던에서 풀어낸 한국적 정체성을 입다.
미국 백악관 국빈 만찬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카말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 사진 미스 소희 인스타그램
지난해 백악관에서 진행된 국빈 만찬에서 미국 부통령 카말라 해리스는 벌룬 소매와 화려한 허리 장식이 강조된 파란색 블라우스를 착용했습니다. 평소 입던 무채색의 스타일과는 사뭇 달라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의상은 '미스 소희(Miss Sohee)' 제품으로 한국 출신의 디자이너 박소희가 전개하는 브랜드입니다.
돌체앤가바나가 후원한 미스 소희 F/W 2022 컬렉션 / 사진 Sí Fashion 유튜브
박소희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런던으로 넘어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줄곧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과 전통자수를 사랑하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했지만, 미스 소희의 디자인에는 한국적이고 빈티지한 스타일이 매력적으로 녹아 있는데요.
2022년 돌체앤가바나의 후원으로 선보인 컬렉션은 한국의 민화를 주제로 했으며 호랑이, 까치, 해와 달, 꽃과 산 등의 요소를 활용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테일러 힐과 미국 여배우인 클로이 파인만이 2022년 '멧 갈라(Met Gala)'에 참석할 때 착용하기도 했죠. 그 외에도 박소희 디자이너의 옷은 레드카펫에서 자주 목격됩니다. 202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판빙빙과 메간 폭스가 착용하기도 했죠. 이때 착용된 드레스에는 한국 민화가 떠오르는 무늬와 자개장이 연상되는 장식이 돋보였습니다.
K-피플 90회 "한복의 미를 살리다" 이화 한복 로라 박 대표 편 / KBS America 유투브
'이화 웨딩&한복' 한국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상호는 미국 LA에서 4대째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복점의 이름입니다. 현재는 로라 박(한국명 박이화) 대표가 32년 동안 운영하고 있죠. 그의 외증조할아버지가 평안도에서 원단 장사를 했고, 이어 외할머니가 한복을 짓던 것이 어머니 때에 와서는 전쟁으로 인해 피난길을 따라 종로 광장시장 포목상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후 1985년 캘리포니아로 박 대표가 유학을 오게 되면서 평안도부터 시작된 가업은, 마치 민들레 씨앗이 퍼져 땅에 내리듯, 한반도 멀리 LA에도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한복을 입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는데, 오히려 미국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의 파티 패션으로 한복이 인기라고 합니다. 한복 저고리에 바지나 치마를 믹스매치 하기도 한다죠. 본래 전통 복식은 명절이나 국가 행사, 관혼상제 등에서 그 모습이 오래 남기 마련입니다만, 한국은 이제 명절이나 혼례 때도 전통 복식을 잘 입지 않게 되었죠. 반면에 해외 한인 사회에서는 되레 결혼식과 돌잔치 등에서 여전히 한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유지된 한복 문화가 한류를 따라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죠.
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아래) '파친코' 스틸 컷 / 사진 애플tv+
21년에는 미국 뉴저지주가 10월 21일을 '한복의 날'로 지정하였으며, 올해부터는 11월 22일 또한 김치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뉴저지의 한인 고교생들이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에 맞서 당국을 설득한 것을 계기로 맺어진 결과인 것을 알고 계셨나요. 한복이 많이 보이는 경복궁 일대에서도 한복을 체험하는 것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인 것을 생각하면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정작 한국에서는 '한복의 날'이 체감되지 않을 정도죠. 언젠가 한복입는 한국인은 존재하지 않게 되진 않을까요.
지난해에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파친코'에 대해 미국 일간지인 뉴욕타임스가 작품 속 한복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다룬 기사를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20세기 초 한국인의 일상생활과 세부적인 묘사를 볼 수 있으며 역사를 통해 어떻게 변해갔는지, 인문학적인 발견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한국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임에도 미국에서 더욱 관심을 두고, 깊이 있는 리뷰를 전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이라 궁금증이나 탐구하고자 하는 호기심이 차마 피어나지 못한 탓도 있을 겁니다. 종종 다른 문화를 살아온 이의 눈을 빌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IISE' 이태원 쇼룸
IISE(이하 '이세')는 재미교포 2세인 김인규(케빈), 김인태(테렌스)가 2014년부터 전개해 온 패션 브랜드입니다. 올해로 어느덧 10년 차를 맞이한 브랜드죠. 2012년, 김인규, 김인태 대표는 처음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 한인타운에서 삼겹살이나 순두부찌개를 먹어본 것이 전부였지만, 이후 쭉 한국에 머물며 걸음마 떼듯 시작해 어느새 서울과 뉴욕에서 패션위크를 열고 최근에는 이태원 쇼룸을 이전하면서, 한국적 정체성을 고유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이세의 개성이 녹아든 공간까지 멋지게 꾸려냈습니다.
이세는 2014년, 첫 컬렉션을 천연 염색기법을 활용한 가방으로 시작했는데, 인사동에서 마주친 스님의 가방이 멋져, 결국 불교용품점까지 따라가 구매한 일을 계기로 이어진 결과였습니다. 이후로도 이세는 한옥 문살을 모티브로 만든 로고 디자인부터, 한국 장인의 염색을 통한 원단 샘플링, 한지를 섞어 직조한 원단, 그리고 2019년에는 시청에서 목격한 시위대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까지, 차곡차곡 쌓아가며 자신만의 색을 다져왔죠. 이세는 한국적 정체성이 담겨있지만, 고루한 전통성보다는 재미교포 2세라는 배경을 가진 이들이 직접 바라본 한국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담아 되레 신선한 관점과 발견을 보여주는 브랜드입니다.
IISE VOL.1 / NO.1 / 유투브 채널 'IISE SEOUL'
그리고 2023년, 10년 차를 맞이한 이세는 서울에서도 가장 독특한 도시 풍경을 지닌 이태원에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과 함께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평택으로 기능을 이전한 용산 미군기지와 이슬람 사원, 일본인 밀접 지역인 이촌동 등 다국적 문화가 자리잡은 용산에서도 이태원은 그 중심이 되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모습이 섞여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 됐습니다. 특히 여행객뿐 아니라 생활권으로 삼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아 그 문화가 깊이 녹아있죠. 그리고 이태원은 고급 멘션에서 붉은 벽돌집까지 이어지는 건축물의 풍경부터, 스트릿에서 하이앤드 패션까지 이태원은 현재까지도 서울의 그 어느 동네보다도 활발하고 역동적인 곳으로 주목받는 곳입니다. 여러 문화권이 뒤섞이는 용광로 같은 곳, 재미교포 2세와 전통이라는 이세의 정체성과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복궁 기와지붕에서 영감을 받은 스피커 구조물과 모듈식 행거
이번 리뉴얼을 통해서 이세는 장인정신에 중점을 두고 연구 개발한 컬렉션 Vol.1 / No.1 을 런칭했습니다. 기존의 대량생산 라인의 공정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소규모로 전환하며, 시그니처 누비 같은 이세만의 고유한 원단 개발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새로운 쇼룸의 인테리어는 '리파인드(REFYND) 스튜디오'와 협력하였으며, 이세의 컬렉션과 함께 한국 현대 미학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경험하는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쇼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스피커 구조물은 경복궁 기와지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IISE의 시그니처 누비 원단
이번 컬렉션에서도 여전히 누비를 활용한 제품을 발견할 수 있으며, 한복의 여밈의 형태, 복주머니 등을 활용한 디테일 또한 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세는 이런 요소를 전면에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전통적인 요소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과 그로 인해 생겨날 수도 있는 당위성보다도 시각적,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멋지다는 인상을 먼저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죠.
설명의 여부가 제품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좋은 제품은 그 본질이 사용자에게 직관적으로 전해지는 것이죠. 공예품의 미감은 직접 써 봐야 제대로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전통적 요소와 모티브를 전면에 내세우고 설명을 통해 제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봤을 때, 쥐고 사용했을 때 '기분 좋다'는 느낌이 앞서 드는 것 아닐까요.
자연스러운 퇴색의 아름다움을 담은 IISE의 오버다잉 코튼 소재의 캡
이세는 간결하게 표현하지만, 그것을 위해 간결하지만은 않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전통적 기법과 재료의 학습과 활용, 실험, 그리고 장인과의 소통과 협업을 통한 세대 간의 교류까지, 10년 차를 맞이하며 어느덧 이세가 표현하는 한국적 정체성에는 이세다운 면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이어갈 한국을 바라보는 이세의 독창적인 시선과 한국적 정체성의 새로운 발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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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_전시장뷰 B1 /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한국적 모티브를 동시대 예술언어와 사회문화적 문맥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전시가 있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강서경 작가는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버들 북 꾀꼬리>는 그의 최대 규모 미술관 개인전이라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전시 제목이자 신작 영상의 제목인 <버들 북 꾀꼬리>는 전통 가곡 이수대엽(二數大葉)의 <버들은>을 참조한 것으로, 마치 실을 짜듯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어내던 선인들의 비유를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_전시장뷰 1F /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전시는 조선시대 유량악보인 정간보(井間譜)의 '우물정(井)'자 모양에서 착안한 작품 <정 井>부터 사계의 움직임과 우리 산의 능선을 표현한 영상작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었는데요. 관람을 하다보면 한 폭의 한국화가 3차원으로 펼쳐져 공감각적으로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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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s Pick
전통을 모티브로 일상에 생기를! 월간한복 에디터가 선택한 금주의 아이템을 소개합니다.
효미당 양갱 세트/ 사진 오아시스 마켓
추운 겨울엔 달달함을 더해야 해요 <효미당 양갱>
겨울이면 해가 짧아지고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햇빛을 볼 때 생성되는 호르몬 세로토닌의 분비량이 줄어들게 됩니다. 세로토닌은 우리의 기분과 행복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서, 많이 분비될수록 더 행복하고 안정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겨울철 붕어빵, 호떡처럼 달콤한 길거리 음식이 당기는 이유는 춥고 흐린 날씨로 인한 우울감을 극복하려는 우리 몸의 생리적인 반응 아닐까요? 이러한 이유로 월간한복 에디터는 겨울에 달달한 음식을 필히 챙겨 먹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며, 요즘 빠져있는 간식을 소개 드리려 합니다. 효미당 양갱은 국내산 농산물을 고집하여 옛방식 그대로 만든 양갱입니다. 고구마, 팥, 단호박, 밤 네 가지 맛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는 밤맛을 가장 좋아합니다. 올겨울은 우리 전통간식으로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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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Publisher
박경철 Kyoungcheol Park
뉴스레터 편집장 Editor in Chief
이경근 Gyunggeun Lee
기자 Editor
신정민 Jungmin Shin
송윤하 Yoonha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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