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64] 월간한옥, 10년을 톺아보기 ― 기록을 넘어, 시간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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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기록을 넘어, 시간을 거닐다.

월간한옥은 지난 10년간 줄곧 '지금, 여기'의 언어로 우리 전통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낡은 공간과 건축물 속에서 새로운 시선과 의미를 발견했으며, 과거의 흔적에서 현재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쌓아 올린 책이 마흔한 권에 이르렀습니다. 각 권에는 출간 당시 우리가 느꼈던 미감과 그 시대의 질문들, 그리고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때로는 무너져가는 골목길을 걸으며 잊혀가는 풍경을 기록했고, 도심 속 작은 정적을 붙잡아내려 했습니다.

기억을 품은 창호에 귀 기울였으며, 흙과 나무가 지닌 고유의 결을 따라가며 우리 감각의 흐름을 차분히 기록했습니다. 그 긴 여정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전통이란 단순히 물려받은 '물건'이 아니라, 우리가 온몸으로 느끼고 살아내는 '감각'이라는 사실입니다. 장인이란 그저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시간 그 자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장소란, 형태로서의 '공간'을 넘어 누군가의 삶의 온도를 품고 있는 '기억의 집합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축적되었고, 그 시간 속에는 '한옥'이라는 창(窓)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고 이해하려 했던 이 세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바로 그 소중한 축적의 흐름을 돌아보고, 월간한옥이 지난 시간 동안 걸어온 궤적을 새로운 시선으로 엮어낸 5주간의 기획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제, 독자와 함께 시간의 결을 따라 다시 한번 거닐어 보려 합니다. 기억하고 싶은 페이지를, 혹은 새롭게 다가올 페이지를 조용히 다시 펼치면서요. 이 기획이 월간한옥의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보는 단단한 기록이자, 독자에게는 오래도록 꺼내 볼 만한 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제로 돌아보는 월간한옥, 10년의 기록


 2017년, 한옥을 짓는다는 것

2017년, 월간한옥은 '짓는' 한옥에 주목했다. 화려한 기와나 섬세한 단청 너머, 한옥이 숨 쉬고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 되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집의 뼈대를 세우는 나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집의 살이 되는 '흙'이다.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해 온 건축 재료이자, 한옥을 한옥답게 만드는 친환경적인 힘. 단순한 흙덩이가 아닌, 습도를 조절하고 유해 물질을 거르는 살아있는 재료로서 황토가 가진 가치와 전통 방식의 미장 기법까지. 한옥 건축의 숨겨진 기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옥의 깊이를 더하는 자연 재료, 그 중 흙은 건물의 따뜻한 살과 같다. 특히 황토는 습도 조절부터 유해 물질 분해까지 탁월한 기능으로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만든다. 황토와 모래, 짚 등을 섬세하게 배합하여 빚는 미장 과정은 한옥을 완성하는 중요한 단계다. 이처럼 흙으로 숨 쉬는 한옥은 건강한 생태주택으로서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 2017 월간한옥 No.2 중
<흙을 사용한 7가지 방법> 요약





  2018년, 전통의 공간을 살펴보다
2018년 월간한옥은 전통 공간의 깊이에 주목하며, 단순한 건축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자연과의 조화를 탐구했다. 특히 소쇄원은 조선시대 유학자의 은둔과 수양의 공간으로,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져 방문자에게 깊은 평온과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월간한옥은 로버트 파우저의 에세이를 통해 소쇄원이 지닌 감성적 회복과 고요함의 의미를 전했다. 이번 연휴, 소쇄원을 찾아 초록 속의 고요와 온전한 쉼을 경험하기를.




소쇄원은 유학자 양산보가 조광조 사화 이후 은둔하며 지은 조선시대 대표 정원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수양과 교유의 공간이 되었다. 이곳은 구불구불한 동선, 다양한 건축 요소, 자연의 경관 속에서 방문자에게 깊은 평온을 제공한다. 김인후를 비롯한 조선 문인들이 찬미한 이 정원은 오늘날까지도 감성적 회복과 고요한 사유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 2018 월간한옥 No.16 중
<The Soswaewon Garden : Korea's Most Beautiful Hiding Place> 요약
ⓒ 글 Robert J. Fouser  |  사진 강민정





 2019년, 도시 속의 전통을 기억하다

2019년, 월간한옥은 도시의 풍경 속에 스며든 전통의 흔적을 돌아보았다. 시간이 멈춘 박물관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도시 공간 안에서 전통이 어떻게 기억되고 변주되는지 탐색했다.

그 여정의 대표적인 목적지 중 하나는 바로 인천 제물포다. 19세기 말 개항 이후 형성된 청국과 일본 조계지가 공존하는 이곳은, 각기 다른 문화가 남긴 건축과 공간의 언어로 역사를 이야기한다. 

외형을 넘어, 그 안에 얽힌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현재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제물포를 찾아 살아있는 전통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인천 제물포는 19세기 후반 개항과 함께 청국과 일본의 조계지가 조성되며 독특한 문화적 지형을 형성한 도시다.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붉은 기둥과 패루, 화교 학교가 있는 차이나타운(청국 조계지)과 일본 드라마 세트장 같은 해안동(일본 조계지)이 뚜렷한 시각적 경계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각 조계지의 건축물과 세부 장식은 단순히 이국적인 풍경을 넘어,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제물포는 과거에 멈춰 있지 않다. 특히 차이나타운은 중국계 상인과 거주민이 여전히 생활하는 '사람의 동네'로서, 변화 속에서도 일상의 모습과 기억을 지키며 장소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제물포의 모습은 '도시 속의 전통'이 과거의 재현을 넘어 현재의 삶과 연결된 살아있는 감각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2019 월간한옥 No.19 중 <제물포> 요약
ⓒ 글 박경철  |  사진 강민정




 2020년, 한옥 ― 사람을 품다

2020년, 월간한옥은 한옥 공간이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만나고 교감하며 온기를 만들어내는가에 주목했다. 강릉 선교장은 이러한 주제 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건축의 외형을 넘어, 그 안에서 오롯이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과 철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향기로운 솔내음과 연꽃차, 대대로 이어져 온 장서 문화와 고즈넉한 차실 풍경 속에 스며든 이 집은, ‘살아있는 한옥’이 무엇인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증명한다. 사람이 머물렀던 자리에 배어든 그 따뜻한 온기, 바로 그것이 강릉 선교장이 시대를 넘어 간직한 전통의 진정한 힘일 것이다.




강릉 선교장은 푸른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대규모 양반가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향기와 인심, 풍류와 책문화, 그리고 정갈한 음식의 전통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삶의 품격을 보여준다. 선교장은 집이 단지 구조물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의 품성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는 그릇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한옥이다.


― 2020 월간한옥 No.25 중 <고택 2 - 강릉 선교장> 요약
ⓒ 글 ·사진  차장섭 강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2021년, 전통의 기원을 다시 묻다 
2021년, 월간한옥은 전통의 뿌리를 다시 묻는 의미 있는 여정을 가졌다.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 전통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그리고 그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종묘와 마주했다.종묘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유교를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의 건국 이념과 왕권의 상징이자, 조상 숭배라는 전통의 '기원'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다. 오직 제례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설계된 종묘의 건축은 불필요한 꾸밈 없이 오직 기능에 충실하며, 이를 통해 조선 왕실의 엄숙함과 근엄함을 보여준다. 

정전의 장엄한 모습부터 세세한 건축 요소까지, 종묘가 간직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조선 전통의 시작과 그 깊은 의미를 다시금 헤아려 볼 수 있다.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는 유교를 근본으로 삼은 조선 왕조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태조 이성계가 1395년 '좌묘우사(左廟右社)' 원칙에 따라 한양에 건립했으며, 오직 제례 기능만을 위해 단순하고 엄숙하게 지어졌다. 

외삼문과 신로, 500년 역사 속 증축된 정전 등 각 공간은 제례 순서에 맞춰 배치되었고, 불필요한 장식 없이 기능에 충실한 건축적 특징을 보여준다. 정전의 끝없이 이어진 판문과 간결한 창호 등을 통해 조선 왕실의 근엄함과 제례의 엄숙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종묘가 가진 깊은 역사와 철학을 드러낸다.


― 2021 월간한옥 No.27 중 <조선왕조의 신주가 봉인된 종묘> 요약
ⓒ 글 강혜정  | 사진 서헌강





 2022년, 전통은 어떻게 조형이 되는가 

2022년, 월간한옥은 전통이 어떤 '미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가에 주목했다. 건축의 형태를 넘어, 색깔이나 재료 같은 시각적 요소가 어떻게 전통의 정신과 가치를 담아내는지 탐색한 것이다. 그 탐구의 과정에서 우리는 창덕궁 선정전의 푸른 기와에 담긴 이야기에 깊이 집중했다. 고려의 화려함과는 달랐던 조선의 미감, 유교적 검소함 속에서도 왕들이 그토록 고집했던 청색 기와의 특별한 아름다움과 상징성을 조명했다. 


귀하고 까다로운 재료와 제작 때문에 쉽게 허락되지 않았지만, 왕실의 권위와 미학적 열망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공간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던 청기와. 선정전의 파랑 이야기는 전통의 미학을 바라보던 여정에 중요한 순간이었다.




조선시대 창덕궁 선정전은 유일하게 청기와 지붕을 가진 건축물로, 왕실 권위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청기와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했으나, 고비용과 유교적 절제 사상으로 인해 조선에서는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세종, 성종, 중종 등 왕들은 종종 청기와 사용을 시도했고, 강한 왕권 하에 제한적으로 실현되기도 했다. 선정전은 왕의 공식 집무 공간으로, 청기와의 상징성과 왕조의 기록 정신이 모두 담긴 장소이다. 청기와는 전통을 ‘조형하는’ 방식이 정치적 상징, 색채의 감성, 권위의 시각화라는 다층적 의미로 구성된 사례다.


― 2022 월간한옥 No.32 중 <선정전 청기와 - 청색에 매혹된 조선의 왕> 요약
ⓒ 글 신정민  |  사진 김기용






 2023년, 새로운 전통을 조명하다

2023년, 월간한옥은 '새로운 전통'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품었다. 

전통이 그저 과거의 유산에 머물지 않고, 현재 속에서 살아 숨 쉬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창조적인 힘이 필요할까. 우리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동서양,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시대를 앞서 나간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를 주목했다. 

그의 예측 불가능한 시도와 파격적인 융합 속에서, 우리는 전통의 새로운 가능성과 우리 시대에 필요한 예술의 역할에 대한 깊은 영감을 얻었다.




백남준은 텔레비전 등 전자매체를 예술에 도입하며 기술을 인간 소통과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따뜻한 도구로 보았다. 플럭서스 활동을 통해 예술의 위계를 파괴하고 관객 참여를 이끌어냈으며,존 케이지와 같은 스승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동서양 철학을 자신의 예술에 녹여냈다. 

대표작 <TV 부처>는 동양의 명상과 서양의 기술을 결합하여 물질 문명 속 정신적 가치를 탐색한 작품이다. 백남준의 작업은 기술과 자연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전통의 영역을 확장하고 미래 예술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2023 월간한옥 No.38 중 
<백남준 사상과 미학 - 기술이 예언이 될 때> 요약
ⓒ 글 이용우  |  사진 백남준문화재단






 2024년, 우리의 전통을 재해석하다

2024년, 월간한옥은 '우리의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하며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여정을 제안한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는 '무미(無味)'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자극적인 맛과 화려한 색에 지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수하고 슴슴한 것들이 지닌 담백한 미감은 어떤 울림을 줄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과하지 않은' 무미의 가치는 유교 사회였던 조선이 추구했던 검박함 속에서도 빛나던 백자의 색과 형태로 이어진다. 

화려함을 더하기보다 불필요한 것을 빼내는 '빼기의 조형' 속에서, 우리는 우리 전통이 가진 깊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무미(無味)'라는 단어가 가진 '수수하고 슴슴한' 의미를 통해 우리 전통의 미학을 탐구한다. 맛이나 향이 특별하지 않은 맹물처럼, 무미는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함을 상징한다. 

흰색은 생명(젖, 곡식)과 죽음(풍화된 뼈)을 아우르는 영원성이자 색의 영점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깊은 의미를 가진다. 조형에 있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빼기'의 방법은 과하지 않은 미감을 추구했던 조선 시대 유교 사상과 연결된다. 조선의 백자 제기는 담담하고 경건한 형태와 쨍하지 않고 잡티가 스며든 흰색으로 이러한 무미의 미학을 보여준다. 

우리가 선호하는 흰색은 튀지 않고 부드러운 색이며, 이는 백석 시인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국수를 노래한 것처럼,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우리 감성과 맞닿아 있다.


― 2024 월간한옥 No.40 중 <무미 - 수수하고 슴슴한> 요약
ⓒ 글 박현택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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