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복 뉴스레터 #7
- 🌿 제주니까 탄생한 전통한복
- 🌋 화산섬 농부의 작업복, '갈옷'
- 🏃 무형문화유산을 향한 갈옷의 도전
- 🎙️ <옵써> 인터뷰
- 📢 한복 전시소식, <활옷 만개>
- 📌 Editor's Pick, <고려청자 에어팟 케이스>
'제주'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색상은 다양합니다. 하늘과 맞닿는 해변의 맑고 푸른색, 과하지 않은 채도로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오름의 초록색처럼 다채로운 제주의 자연은 여러 가지 색을 만들어 냅니다. 특정 지역의 기후, 식생, 위치 등 고유한 자연환경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지역민의 의 · 식 · 주와 같은 생활양식으로 표현됩니다. 한반도 남쪽 끝에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이나 독특한 자연환경과 구분되는 문화가 나타납니다.
현대에는 집이나 식문화보다 변화가 많아 쉽게 발견할 수 없게 되었지만, 제주에는 자연의 색을 담은 복식 문화 또한 존재하는데요. 월간한복 7번째 레터는 제주의 특색이 고스란히 반영된 전통의복, 갈옷에 대해 살펴보며,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가려는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감물 염색에 사용하는 풋감 / 사진 제주 농업기술원
갈옷은 덜 익은 풋감을 으깨어 얻은 감즙을 무명천에 염색하여 입는 제주의 전통의복입니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집집마다 심겨진 감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음력 7월을 전후로 제주민들은 덜 익어 푸른색을 띠는 풋감을 따서 빻았습니다. 풋감을 찧을 때 생기는 하얀 씨는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아이들의 간식이 되었고, 부산물인 감즙은 옷이나 옷감에 물을 들이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선조들은 천에 감물(감을 빻아 얻은 물)을 고루 염색하기 위해서 시간과 힘이 들더라도 양손으로 직접 주물렀습니다. 이후 볕에 15분 정도 염색 천을 말린 후 '손보기' 작업을 합니다. 이는 천을 당기고 밟아 주름을 펴내는 과정입니다. 최종적으로 천을 볕에 말리는 것을 '바래기'라고 말하는데, 바래기의 시간적 단위는 한나절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붉은 갈색의 갈옷을 얻기 위해서는 8~10번 정도의 바래기 과정이 필요합니다.
'손보기'와 '바래기'같은 지역 방언인 제주어도 복식 문화에 함께 녹아 있는 요소로 어딘지 정겹고 귀여운 어감이 있지 않나요.
무형문화재 영상기록화사업 '귀리겉보리농사일소리' 보리밭 촬영 현장 / 사진 제주학연구센터
갈옷을 언제부터 입었는지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소개하는 저서에 따르면 약 700여 년 전 어부가 감물을 먹인 낚시줄을 이용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해당 이야기에서도 갈옷의 기능성을 유추할 수 있는데요. 감물을 들인 천은 일반 천보다 3배 정도 더 질겨 잡초나 가시에도 헤지지 않고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작업복으로 적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옷은 빳빳한 질감으로 몸에 잘 달라붙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하여 햇볕이 강한 제주도에서 농사일을 할 때 땀을 많이 흘릴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이런 상황에서 통기성이 좋은 갈옷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또한,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제주도는 해양성 기후로 많은 비가 내리고 해수의 영향도 크게 받았는데 갈옷은 물에 강하고 쉽게 썩지 않아 오래 입을 수 있었죠. 게다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제주는 흙먼지가 자주 날렸는데 갈옷의 색깔은 먼지나 때가 쉽게 타지 않아 노동을 할 때도 깔끔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갈옷은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농토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생활 환경에서도 농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의복이며, 제주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문화적 산물입니다.
2023 천연염색페스티벌 현장 / 사진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제주도는 제주 섬사람의 생활문화가 엿보이는 복식유산으로써의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하며, 2008년 갈옷을 제주 10대 문화 상징으로 선정했습니다. 또한 갈옷을 '미래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하여 2022년부터 갈옷 전승 활성화와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제주도 서귀포농업기술센터에서 "여름, 빛에 물들다"라는 주제로 개최된 <2023 천연염색 페스티벌>도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행사에는 갈옷 패션쇼, 감물 염색 시연 및 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현대인이 전통 갈옷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밖에도 제주시는 갈옷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특별전시회를 여는 등 갈옷의 무형문화유산 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서부 광부들의 작업복이었던 청바지가 오늘날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듯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친환경적인 의복 제주 갈옷의 가치가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참고문헌
김동섭. (2003). 제주 갈옷의 특징과 지역성. 韓國鄕土史硏究全國協議會, 『鄕土史硏究』, 제15집, 217-232.
(2023). 문화재청 미래무형유산 발굴·육성사업 제주 갈옷 학술대회 자료집, 제주 갈옷 전승 양상과 문화유산 가치
📄✏️ 한국적인 것을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 : 옵써 인터뷰 |
한복과 관련된 여러 이해관계자와 함께 한국적 정체성으로 정의할 수 있는 복식문화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
한국적인 것을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 이번 월간한복 레터에서는 현대적 디자인으로 갈옷의 가치를 확장하고 있는 제주 토박이 브랜드 옵써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옵써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옵써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표현하는 브랜드로 저희의 슬로건은 '전통이 주는 쉼'입니다. 갈옷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결합한 제품을 제공하여 잊혀가는 제주의 감물염색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한국의 아름다운 복식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전통적인 한복의 요소와 현대적인 스타일을 결합하여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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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옷을 만드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갈옷은 제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소중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오래전부터 갈색 옷을 입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습니다. 최근 갈옷 원단을 한국의류시험성적원에 보내어 항균성, 자외선차단성, kc인증 등을 시험성적 해보았는데 항균성 99%, 자외선차단율 98%, 소취율 98%가 나와서 정말 놀라웠어요. 우리 조상님들은 어떻게 이렇게 지혜로웠을까요. 잊혀가는 제주도의 유산을 제가 나름대로 이어 나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등동에서 직접 염색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사람들과 다양한 소통을 하며 제주도의 "갈물염색문화"를 알리고있어요. 몸이 고되긴 하지만, 하루하루 천의 발색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아이가 없지만 제 아이를 키우는 느낌이랄까요. 이 옷을 알리기 위해 제가 시도한 활동은 다양한 사회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갈옷이 촌스럽지 않고 요즘 사람도 입을 수 있다는 의미를 공유했습니다. 사진과 글을 통해 이 옷의 아름다움과 따뜻한 감성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패션 블로그나 SNS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하여 갈색 옷의 매력을 강조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찾았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할머니께서 만들어 입혀주신 갈옷의 소중한 추억을 바탕으로, 갈옷을 세계화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앞으로는 아동복과 홈웨어 침구 쪽으로도 열심히 디자인하여, 제주의 전통문화인 감물염색과 갈옷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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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써가 전통염색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와 개량한복 방식을 선택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어려움이 오히려 우리 브랜드에게 도전과 열정을 부여합니다. 천연 염색과 전통적인 방식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우리는 이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전통적인 기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집은 옵써가 지속 가능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만드는 데에 큰 차별성을 부여합니다. 또한 염색 방법은 전통으로 두되, 디자인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량한복의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현대 사회에 적합한 스타일과 편안함을 제공하면서도 한국의 아름다운 복식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개량한복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결합한 현대적인 스타일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복을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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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옵써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복식문화는 무엇인가요?
옵써는 한국적인 복식문화를 현대에 맞게 해석하면서도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합니다. 한국적인 복식문화는 우리 역사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는 이를 존중하고 이어가며 현대 사회에 적합하게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이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문화를 세계와 공유하고자 하는 우리의 비전입니다.
사진 옵써(OPP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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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써 SNS
📢 한복 전시소식 이번 주말에는 한복을 즐기세요. 월간한복이 추천하는 전시 '활옷 만개' |
2023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혼례복>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에서 12월 13일까지 특별전시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혼례복>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주, 옹주, 군부인 등 왕실 여성들의 활옷 9점을 포함한 관련 유물 110여 점을 선보입니다.
2023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혼례복> 프롤로그 영상
현존하는 활옷 가운데 유일하게 착용자가 알려진 '복온공주 활옷' 등 국내에 소장 중인 활옷 3점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활옷 6점이 전시되며, 특히 카운티 미술관 소장 활옷은 BTS RM의 후원을 받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보존 처리를 한 작품으로 쟁점이 되었던 유물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있어 민관 협력의 좋은 사례를 보여줍니다.
전시는 2부로 구성되어 1부에서는 왕실의 혼례문화를 활옷과 각종 유물, 문헌자료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활옷에 초점을 맞춰 관청과 장인을 중심으로 이뤄진 재료 조달과 제작 과정, 활옷의 보존 처리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발기(件記, 왕실 의례에 소용되는 물품, 인명 등을 일일이 나열하여 작성한 목록)
그외에도 활옷을 중심으로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 예로 조선의 의례 복식은 엄격한 제도 아래 제작과 착용이 이뤄졌는데, 특히 낭비와 사치를 배척하는 것을 중요시 했다고 하는데요. 과거 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하여 활옷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종이심으로 사용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이 답안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제작 시기를 가늠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난 월간한옥 n.36 <여관>의 인터뷰 기사와 함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대동여지도>의 환수를 맡은 국외소재문화재 재단이 유물 복원에 참여한 만큼 일부 해외 소장 유물에 대해서는 그 출처가 밝혀져 있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활옷 제작 도구
최근에는 결혼 문화에서 '폐백'이 사라지며 전통 혼례복을 착용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번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혼례복>에서는 과거 혼례 문화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연을 맺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우리 선조들이 대했던 마음가짐이나 당대 사회 분위기를 어렴풋이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에 맞게 합리적으로 변화한 부분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지금은 거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운 것들도 있었는데요. 월간한복 독자분들도 이번 전시를 통해 혼례문화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눠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활옷 자수편
전시 기간 : 2023. 9. 15(금) ~ 12. 13(수) 09시~17시 (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 국립고궁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
문의 : 02- 3701-7500*전시는 무료입니다.
문화재 환수 과정이 궁금하다면 월간한옥 n.36호 <여관>도 함께 찾아주세요. 👋
📌 Editor's Pick 전통을 모티브로 일상에 생기를! 월간한복 레터 에디터가 선택한 금주의 아이템을 소개합니다. |
| 내 손안에 작은 도자기
청화백자&고려청자 에어팟 케이스를 소개합니다. BTS의 RM의 아이폰 케이스로도 유명한 '미미달'은 잊혀가는 옛 가치를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브랜드입니다. 케이스에서 고려청자 특유의 비색을 재현하기 위해 100번이 넘는 컬러 테스트를 거쳤다고 하는데요, 광택으로 마무리하여 질감이 더욱 실제 도자기와 비슷합니다. 월간한복 레터 에디터는 청화백자 케이스를 선택했는데요, 에어팟을 꺼내볼 때마다 한국적 정취가 느껴져 더욱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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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한복 짓는 이들의 이야기, 함께 참여해주세요! |
월간한복 레터는 다양한 한복 제작자들이 생각하는 한복이 무엇인지 듣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가치관과 의견을 존중하며 이해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넓혀,
적어도 어떤 범위로 규정될 수 있는 동시대의 한복에 대해 알아가고자 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한복에 대한 궁금증이나 이야기를 듣고 싶은 한복 디자이너, 브랜드를 알려주세요.
다음 뉴스레터부터 한복을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어 보내드립니다. 이후 월간한복 레터를 통해 만나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복 이야기에 함께 참여해주세요!
발행인 Publisher
박경철 Kyoungcheol Park
뉴스레터 편집장 Editor in Chief
이경근 Gyunggeun Lee
기자 Editor
신정민 Jungmin Shin
송윤하 Yoonha Song
월간한복 뉴스레터 #7
'제주'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색상은 다양합니다. 하늘과 맞닿는 해변의 맑고 푸른색, 과하지 않은 채도로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오름의 초록색처럼 다채로운 제주의 자연은 여러 가지 색을 만들어 냅니다. 특정 지역의 기후, 식생, 위치 등 고유한 자연환경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지역민의 의 · 식 · 주와 같은 생활양식으로 표현됩니다. 한반도 남쪽 끝에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이나 독특한 자연환경과 구분되는 문화가 나타납니다.
현대에는 집이나 식문화보다 변화가 많아 쉽게 발견할 수 없게 되었지만, 제주에는 자연의 색을 담은 복식 문화 또한 존재하는데요. 월간한복 7번째 레터는 제주의 특색이 고스란히 반영된 전통의복, 갈옷에 대해 살펴보며,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가려는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감물 염색에 사용하는 풋감 / 사진 제주 농업기술원
갈옷은 덜 익은 풋감을 으깨어 얻은 감즙을 무명천에 염색하여 입는 제주의 전통의복입니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집집마다 심겨진 감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음력 7월을 전후로 제주민들은 덜 익어 푸른색을 띠는 풋감을 따서 빻았습니다. 풋감을 찧을 때 생기는 하얀 씨는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아이들의 간식이 되었고, 부산물인 감즙은 옷이나 옷감에 물을 들이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선조들은 천에 감물(감을 빻아 얻은 물)을 고루 염색하기 위해서 시간과 힘이 들더라도 양손으로 직접 주물렀습니다. 이후 볕에 15분 정도 염색 천을 말린 후 '손보기' 작업을 합니다. 이는 천을 당기고 밟아 주름을 펴내는 과정입니다. 최종적으로 천을 볕에 말리는 것을 '바래기'라고 말하는데, 바래기의 시간적 단위는 한나절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붉은 갈색의 갈옷을 얻기 위해서는 8~10번 정도의 바래기 과정이 필요합니다.
'손보기'와 '바래기'같은 지역 방언인 제주어도 복식 문화에 함께 녹아 있는 요소로 어딘지 정겹고 귀여운 어감이 있지 않나요.
무형문화재 영상기록화사업 '귀리겉보리농사일소리' 보리밭 촬영 현장 / 사진 제주학연구센터
갈옷을 언제부터 입었는지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소개하는 저서에 따르면 약 700여 년 전 어부가 감물을 먹인 낚시줄을 이용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해당 이야기에서도 갈옷의 기능성을 유추할 수 있는데요. 감물을 들인 천은 일반 천보다 3배 정도 더 질겨 잡초나 가시에도 헤지지 않고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작업복으로 적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옷은 빳빳한 질감으로 몸에 잘 달라붙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하여 햇볕이 강한 제주도에서 농사일을 할 때 땀을 많이 흘릴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이런 상황에서 통기성이 좋은 갈옷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또한,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제주도는 해양성 기후로 많은 비가 내리고 해수의 영향도 크게 받았는데 갈옷은 물에 강하고 쉽게 썩지 않아 오래 입을 수 있었죠. 게다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제주는 흙먼지가 자주 날렸는데 갈옷의 색깔은 먼지나 때가 쉽게 타지 않아 노동을 할 때도 깔끔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갈옷은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농토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생활 환경에서도 농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의복이며, 제주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문화적 산물입니다.
2023 천연염색페스티벌 현장 / 사진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제주도는 제주 섬사람의 생활문화가 엿보이는 복식유산으로써의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하며, 2008년 갈옷을 제주 10대 문화 상징으로 선정했습니다. 또한 갈옷을 '미래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하여 2022년부터 갈옷 전승 활성화와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제주도 서귀포농업기술센터에서 "여름, 빛에 물들다"라는 주제로 개최된 <2023 천연염색 페스티벌>도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행사에는 갈옷 패션쇼, 감물 염색 시연 및 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현대인이 전통 갈옷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밖에도 제주시는 갈옷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특별전시회를 여는 등 갈옷의 무형문화유산 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서부 광부들의 작업복이었던 청바지가 오늘날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듯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친환경적인 의복 제주 갈옷의 가치가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참고문헌
김동섭. (2003). 제주 갈옷의 특징과 지역성. 韓國鄕土史硏究全國協議會, 『鄕土史硏究』, 제15집, 217-232.
(2023). 문화재청 미래무형유산 발굴·육성사업 제주 갈옷 학술대회 자료집, 제주 갈옷 전승 양상과 문화유산 가치
한복과 관련된 여러 이해관계자와 함께 한국적 정체성으로 정의할 수 있는 복식문화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
한국적인 것을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 이번 월간한복 레터에서는 현대적 디자인으로 갈옷의 가치를 확장하고 있는 제주 토박이 브랜드 옵써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옵써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옵써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표현하는 브랜드로 저희의 슬로건은 '전통이 주는 쉼'입니다. 갈옷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결합한 제품을 제공하여 잊혀가는 제주의 감물염색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한국의 아름다운 복식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전통적인 한복의 요소와 현대적인 스타일을 결합하여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갈옷을 만드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갈옷은 제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소중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오래전부터 갈색 옷을 입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습니다. 최근 갈옷 원단을 한국의류시험성적원에 보내어 항균성, 자외선차단성, kc인증 등을 시험성적 해보았는데 항균성 99%, 자외선차단율 98%, 소취율 98%가 나와서 정말 놀라웠어요. 우리 조상님들은 어떻게 이렇게 지혜로웠을까요.
잊혀가는 제주도의 유산을 제가 나름대로 이어 나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등동에서 직접 염색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사람들과 다양한 소통을 하며 제주도의 "갈물염색문화"를 알리고있어요. 몸이 고되긴 하지만, 하루하루 천의 발색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아이가 없지만 제 아이를 키우는 느낌이랄까요. 이 옷을 알리기 위해 제가 시도한 활동은 다양한 사회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갈옷이 촌스럽지 않고 요즘 사람도 입을 수 있다는 의미를 공유했습니다. 사진과 글을 통해 이 옷의 아름다움과 따뜻한 감성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패션 블로그나 SNS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하여 갈색 옷의 매력을 강조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찾았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할머니께서 만들어 입혀주신 갈옷의 소중한 추억을 바탕으로, 갈옷을 세계화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앞으로는 아동복과 홈웨어 침구 쪽으로도 열심히 디자인하여, 제주의 전통문화인 감물염색과 갈옷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습니다.
옵써가 전통염색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와 개량한복 방식을 선택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어려움이 오히려 우리 브랜드에게 도전과 열정을 부여합니다. 천연 염색과 전통적인 방식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우리는 이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전통적인 기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집은 옵써가 지속 가능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만드는 데에 큰 차별성을 부여합니다. 또한 염색 방법은 전통으로 두되, 디자인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량한복의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현대 사회에 적합한 스타일과 편안함을 제공하면서도 한국의 아름다운 복식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개량한복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결합한 현대적인 스타일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복을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옵써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복식문화는 무엇인가요?
옵써는 한국적인 복식문화를 현대에 맞게 해석하면서도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합니다. 한국적인 복식문화는 우리 역사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는 이를 존중하고 이어가며 현대 사회에 적합하게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이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문화를 세계와 공유하고자 하는 우리의 비전입니다.
사진 옵써(OPPSEO)
옵써 SNS
📢 한복 전시소식
이번 주말에는 한복을 즐기세요. 월간한복이 추천하는 전시 '활옷 만개'
2023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혼례복>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에서 12월 13일까지 특별전시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혼례복>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주, 옹주, 군부인 등 왕실 여성들의 활옷 9점을 포함한 관련 유물 110여 점을 선보입니다.
2023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혼례복> 프롤로그 영상
현존하는 활옷 가운데 유일하게 착용자가 알려진 '복온공주 활옷' 등 국내에 소장 중인 활옷 3점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활옷 6점이 전시되며, 특히 카운티 미술관 소장 활옷은 BTS RM의 후원을 받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보존 처리를 한 작품으로 쟁점이 되었던 유물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있어 민관 협력의 좋은 사례를 보여줍니다.
전시는 2부로 구성되어 1부에서는 왕실의 혼례문화를 활옷과 각종 유물, 문헌자료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활옷에 초점을 맞춰 관청과 장인을 중심으로 이뤄진 재료 조달과 제작 과정, 활옷의 보존 처리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발기(件記, 왕실 의례에 소용되는 물품, 인명 등을 일일이 나열하여 작성한 목록)
그외에도 활옷을 중심으로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 예로 조선의 의례 복식은 엄격한 제도 아래 제작과 착용이 이뤄졌는데, 특히 낭비와 사치를 배척하는 것을 중요시 했다고 하는데요. 과거 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하여 활옷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종이심으로 사용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이 답안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제작 시기를 가늠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난 월간한옥 n.36 <여관>의 인터뷰 기사와 함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대동여지도>의 환수를 맡은 국외소재문화재 재단이 유물 복원에 참여한 만큼 일부 해외 소장 유물에 대해서는 그 출처가 밝혀져 있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활옷 제작 도구
최근에는 결혼 문화에서 '폐백'이 사라지며 전통 혼례복을 착용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번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혼례복>에서는 과거 혼례 문화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연을 맺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우리 선조들이 대했던 마음가짐이나 당대 사회 분위기를 어렴풋이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에 맞게 합리적으로 변화한 부분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지금은 거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운 것들도 있었는데요. 월간한복 독자분들도 이번 전시를 통해 혼례문화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눠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활옷 자수편
전시 기간 : 2023. 9. 15(금) ~ 12. 13(수) 09시~17시 (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 국립고궁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
문의 : 02- 3701-7500*전시는 무료입니다.
문화재 환수 과정이 궁금하다면 월간한옥 n.36호 <여관>도 함께 찾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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