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뉴스레터 55호
- 수학여행의 추억부터 한 달 살기까지, 제주에 대한 기억들
- 돌로 지어진 제주의 점, 선, 면
- 인터뷰 - 탈로제주, 터전의 생애를 기억하며 이어가는 곳
- 마주함으로써 기억하기, 제주의 다크투어리즘
수학여행의 추억부터 한 달 살기까지 제주에 대한 기억들 |
제주도 풍경 / 사진 월간한옥
작년,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우리들의 블루스>가 화려한 출연진과 그에 상응하는 열연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과 함께 '제주어', '관당(궨당)문화'를 비롯해 '어멍'이라 불리는 극 중 인물들을 통해 제주 여성의 삶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제주의 문화는 당연히 우리 문화의 한 갈래이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해 새롭게 느껴질 때도 있죠.
많은 관심을 받았던 '제주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소멸 위기 언어'입니다. 단순 지방 사투리가 아닌 언어로서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 보이는 대목입니다. 익숙한 제주어인 'ᄒᆞᆫ저 옵서예' 처럼 '아래아'를 많이 사용하는 등 중세 국어의 흔적이 남아있어 연구 가치가 높은 언어로 여겨지죠. 이에 '제주어박물관'건립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답니다.
제주도는 한 때, 해외여행이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에는 신혼여행지로 많은 이들이 찾았던 곳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이 있는 곳이며, 몇 년 전부터는 한 달 살기 등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의 공간으로,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차원의 워크플레이스로서도 주목받았죠. 최근까지도 삶의 제2막을 꿈꾸며 떠나거나, 그런 계획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덕분에 제주에는 숙박시설을 비롯해 식당, 카페, 편집샵 등 새로운 공간도 많이 생겨났죠.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해외로 가는 여행길이 막히며 제주를 찾는 이가 많아졌습니다.
제주 원도심 / 사진 월간한옥
그만큼 제주도는 가볼 만한, 가봐야 할 새로운 공간이 많이 생겨났죠. 그렇게 생겨난 공간들은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제주의 일부가 되기도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제주의 일부로서 역사, 문화적인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과 고민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떠한 맥락 없이, 한국의 여러 도시가 겪고 있는 것처럼 그저 서울의 복제품이 되어 가는 모습도 일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 돈이면 제주에 갈 바에 해외를 간다.', '한국인에게 외면당한 제주도' 같은 비판적인 말들은 지금 제주가 과도기를 지나며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지만, 또한 제주다움을 잃어간다는 것에 대한 걱정과 우려이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올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내국인 기준으로 16%가량 감소했습니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존재합니다만, 최근 제주도에 대해 투정 가득한 뉴스를 보면 단순히 그것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제주도의 물가나 바가지 같은 문제는 조금만 찾아보더라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그 이유에는 분명 제주의 '변화'도 있을 겁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변화'를 이유로 불화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죠. 시간이라는 개념 아래서 고정된 것은 없기에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제주의 변화와 함께했죠. 그리고 그 변화에는 무언가 사라짐으로써 생겨난 것들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과 사라짐 없이 그저 생겨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새로운 것이 우리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사라지게 했다는 오해가 바탕에 있는 것 아닐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제주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주는 섬이자 우리 나라 최남단 도시입니다. 환경이 다르고 게다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에 고유한 지역 문화가 자리잡았죠. 익히 알려진 것처럼 제주는 화산섬으로 돌이 많습니다. 제주 전역에 점처럼 널린 돌은 농사를 짓기 어렵게 했으며, 해안가에는 배를 정박하기 어렵게 만들었죠. 하지만 결국 섬이라는 환경 안에서 인간과 돌은 공존하기 위해 친해질 수밖에는 없었고, 그 둘이 함께 만든 것들이 곧 제주의 문화가 됐죠.
제주인은 돌을 쌓아 담을 지어 길과 경계를 만들었고, 그것이 모여 고유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돌담은 제주 전역에 걸쳐 혈관처럼 퍼져 있으며, 이를 두고 검은 용이 용틀임을 하는 것 같다고 '흑룡만리'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습니다. '담'은 경계, 분리의 성격을 지닌 구조물입니다. 제주에 많은 돌담은 '돌'이라는 환경적 특성도 드러내지만, 그 안에서 생활했던 제주민들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성향 또한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조형물입니다.
제주의 현무암, 제주돌문화공원 / 사진 월간한옥
제주는 가름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ᄀᆞᆸ가름(分)’습속이라고도 하며, 표준어의 '가로다' 또한 제주 방언인 'ᄀᆞᆯ다'에서 이어진 것이죠. 이런 문화는 돌담뿐만 아니라 가족문화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장남이 결혼해서 분가해도 부모를 모시지 않으며, 한 울타리에 살더라도 경제력을 갖게 되면 거처를 아래채, 위채로 나누어 옮기고 부엌과 장독대 등을 따로 마련하여 먹고 자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과 경영을 두 단위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주거 단위로는 한 가족이지만 경제 단위로는 철저하게 두 가족이 사는 것이죠. 제사 또한 장남이 아니라 형제, 자매간에 공평히 나눠 지냈다고 합니다. 제주의 겹부조 문화 또한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죠.
이런 제주인의 독립성은 '해녀'로 상징되는 제주 여성의 모습에서도 나타납니다. 살림, 육아, 가정, 경제를 모두 책임지는 존재였으니까요. 나아가서는 제주의 효제문자도에서 보이는 3단 구성 또한 육지의 유교에 제주의 토착신앙이 융화되며, 제주의 가름문화가 스며들었다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예술엔 동시대 사조가 반영되는 것을 보면 그럴법한 이야기죠.
제주의 돌담, 제주 김녕해녀마을 / 사진 월간한옥
제주 바다에서 유럽까지, 돌과 문화를 옮기는 돌챙이 |
이렇게 돌담을 쌓는 이들을 제줏말로 돌챙이라 부릅니다. 돌챙이는 원래 담을 쌓는 것부터 돌을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칭하는데요. 돌담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제주에는 돌담 외에도 돌하르방부터 바다에 세워진 원담도 존재합니다.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인공적으로 돌담을 쌓아 막아 두고 밀물 때 따라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돌로 만든 그물인 셈이죠.
지금도 제주에는 직접 사람의 손으로 돌을 고르고 맞춰 담을 쌓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주의 돌빛나예술학교가 있는데요. 제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진행되는 돌담쌓기 챔피언쉽게 출전하거나 아일랜드 돌축제에서 돌하르방을 선보이는 등 한국을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돌담뿐만 아니라 노동요인 돌챙이 노래를 알리는 것부터 감 염색 수업 등 제주 문화를 알리기는 일로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답니다.
물론 이제는 주거 양식이 많이 바뀌어 제주에도 돌담이나 돌챙이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서 제주의 돌 문화는 어떤 식으로든 또 변화를 맞이하며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머무는 공간과 한국적 정체성에 대해
제주 김녕해녀마을 / 사진 월간한옥
이번 여름호 N.36 는 <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숙박문화와 쉼, 여행에서 발견한 한국적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월간한옥은 한국적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매호 관련된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적 정체성을 담은 숙박 시설, 혹은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제주는 우리 문화 중에서도 단연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을 지닌 공간입니다. 탈로제주는 공간이 발붙이고 있는 터에 새겨진 삶의 흔적을 이해하고, 그것다움을 고민하며 잇고 덧붙여 만든 공간입니다.
<여관>은 여러 공간과 함께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전합니다.
'탈로제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인터뷰 - 탈로제주, 터전의 생애를 기억하며 이어가는 곳 |
한국적 정체성이란 으레 생각하기를 그저 옛것을 잘 지켜낸 구석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다만, 저희는 우리네 오랜 이야기가 스며있는 자리가 더욱 기준에 걸맞다고 여겼습니다. 특히나 ‘공간’에서 그것을 가려야 하므로 더욱이 그렇습니다.
모름지기 공간이란 적극적으로 쓰이고 손때가 타서 곰삭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힘써 지켜지기보다는 부단히 새롭게 고쳐 쓰이는 것이 공간의 자연스러운 참모습인 줄로 압니다. 안에서 살아가는 이녁 삶의 씀씀이에 따라 바뀌어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맞춰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어떻게 켜를 이루었고, 아울러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에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적 정체성을 가리는 기준을 ‘우리네 이야기가 켜를 이룬 구석’이라고 줄여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삼은 기준 아래 꼽아보자면 두 곳이 으뜸으로 떠오릅니다. 집을 두른 ‘돌담’과 ‘출입문’입니다. 조금 더 뚜렷이 하자면 돌담과 출입문의 안팎이라고 갈래를 나누어 이야기하겠습니다. |
이곳의 돌담은 대부분 한 겹으로 세워 쌓은 홑담입니다. 돌담에서 옛 돌챙이(돌 쌓기 기술자)가 처음 쌓은 구석은 돌의 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킨 돌일수록 돌꽃과 돌이끼가 가득 피어있기 마련입니다. 새로 쌓은 돌은 그것들이 없거나 엉뚱한 곳에 있어 도리어 두드러집니다. 아마도 큰 바람에 무너져 새로 쌓은 것일 터입니다.
성글기 때문에 바람을 흘려보낼 줄 아는 지혜가 담겼다고 전해지는 제주 돌담이라 할지라도 가을마다 찾아오는 탐탁지 않은 손님인 태풍을 매번 이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을이 지나갈 무렵에는 으레 무너진 돌담을 고쳐 쌓아야 합니다. 저절로 돌챙이들이 바빠지는 때입니다. 그러나 다른 집에서 잇따라 잦게 보게 되는 시멘트를 바른 돌담은 옛 지혜가 겸연쩍을 정도로 굳건합니다.
돌챙이들이 오늘날 씨가 마르게 된 여러 까닭 중 하나이겠습니다. 이곳의 돌담은 오늘날에 돌챙이를 쉽게 찾을 수 없는 탓에 퍽 어쭙잖게 쌓인 구석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중에는 제가 스스로 쌓은 것도 있습니다. 돌을 깎아 반듯하게 쌓는 기술자는 찾아보면 더러 있지만 쌓은 모양이 눈맛에 차지 않고, 시멘트를 바르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여겨 매해 가을에는 고생을 사서 할 것을 각오합니다. |
그런데도 이 집에는 무너질 걱정 없는 튼튼한 돌담이 하나 있습니다. 남쪽 가장자리 돌담입니다. 한 겹 홑담이 아닌 겹담이고, 높이는 무려 삼 미터 가까이 됩니다. 홀로 겹담이 된 까닭은 예로부터 높은 자리였던 이곳의 땅 모양 탓입니다. 사삼(4.3) 사건 때 진압군이라는 패거리들(말이 공산당 진압군이지 잘못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일삼았습니다.)이 마을 사람을 강제로 부려 쌓은 성(城)담입니다. 진압군이 주변 감시를 위해 썼다고 전해집니다. 이 담은 여전히 남아 집 담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사삼의 아픈 역사가 서리지 않은 땅이 어디 없겠습니까만, 유독 이 동네는 그 슬픔이 큽니다. 오죽하면 동네 이름까지 바꿔야 했습니다. 서글픈 이야기입니다.
출입문 밖은 지난 세월의 흔적이 거칠게 쌓여 여태껏 이 집이 어떻게 삶을 이어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리입니다. 터를 잡고 집을 처음 지을 때 쌓아 올렸을 현무암 바깥벽, 억새 짚과 흙을 섞어 처마 아래 틈을 채운 흔적, 세월이 지나 모래가 섞인 시멘트를 외벽 흙 위로 덧바른 흔적, 새마을 운동이 일어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며 처마 끝을 목재로 덧댄 흔적, 그리고 오늘날 새롭게 얹은 골 강판 지붕과 창호 그리고 계단 판석까지. 한 세기 제주 농가주택 역사가 이 자리에 지층처럼 쌓여있습니다. 그것은 작게는 한 집의 역사 그리고 제주의 역사가 되고, 크게 보아서 우리나라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겠습니다. |
현관의 안은 원래 집 밖이었던 툇마루를 덧붙여 늘리어 지은 흔적으로 근대화 과정을 겪은 제주 농가주택에서 흔히 나타나는 독특한 자리입니다. 바람이 거세고 그에 따라 비가 들이치는 제주 기후를 헤아렸을 터이고, 또한 바람이 매서운 겨울에는 집안을 따뜻하게 돕는 지혜가 됐습니다. 이 자리에는 오래전부터 두고 쓰던 나무 툇마루와 늘리어 지으며 새롭게 바닥에 붙인 타일이 세월이 지나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오늘날 새 단장을 하며 창을 바꾸기 위해 반듯하게 바닥을 다듬다가 바닥 면적이 저절로 늘어나 부족해진 타일 자리는 되는대로 새로운 타일로 이어 붙였습니다. 언뜻 잡스러워 보이지만 이 또한 집의 역사를 쪽모이 깁기로 한 조각보처럼 보여 퍽 마음에 드는 구석입니다. 저희가 가꿔가는 숙소는 근대 북유럽 모더니즘 디자인 사상 흐름을 으뜸 주제로 하고 그것의 현대적인 면을 지혜로 삼아 제주의 옛 돌집에 접붙여 꾸렸습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한국적인 구석을 이야기하기에는 어딘가 낯부끄러워 앞서 말씀드린 요소들이 그저 꿰맞추기식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도 이 ‘접붙이기’란 것이 그저 새로운 것을 가져와 흉내 내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옛것과 어떻게 잘 엮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기에 제주다움, 더 나아가 한국다움에 대해서도 분명 깊게 고민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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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의 사망자는 1만 1천여 명에 달하며 현재까지도 유해발굴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돌담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기억이 담긴 조형물로 아픔도 함께 쌓여 있습니다. 가수 조정현의 노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처럼 제주를 찾고, 애정하는 이들에게, 이런 흔적 또한 맛있는 음식이나 멋진 경관과 함께 품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진 탈로제주
탈로제주에는 월간한옥 N.36 <여관>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숙박문화와 쉼에 대한 한국적 정체성을 월간한옥의 글과 사진으로 함께 누려 보세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공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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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 사진 위키피디아
섬 전체에 퍼진 군사시설, 알뜨르 비행장과 진지동굴 |
제주 역시 근대 역사를 지나며 앞선 4.3사건을 비롯해 많은 사건이 있었고, 탈로제주의 담처럼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은 조선총독부를 폭파한 것처럼 그 흔적을 없애는 방법으로 상처를 다뤄왔습니다. 여전히 적산가옥이나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시설을 없애고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로 바꾸는 등의 필요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죠. 모두 남겨둘 필요는 없지만, 속도는 조금 더딜지언정 똑바로 마주하며 상처를 치유할 필요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등을 비롯해, 근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그런 변화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크투어리즘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죠. 다크투어리즘은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찾는, 재해와 전쟁이 있었던 장소와 죽음, 슬픔 같은 감정을 대상으로 한 관광을 뜻합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로는 알뜨르 비행장과 진지동굴이 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은 1926년 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알뜨르 지역에 일본이 중일 전쟁을 앞두고 지은 비행장입니다. 여기서 알뜨르는 '아랫마을'이라는 의미가 있는, 송악산과 모슬포 사이의 지역이죠. 중일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알뜨르 비행장은 그 규모를 키워가며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됐는데요. 물론 일본군 병력의 배치도 함께였으며 비행장의 시설관리와 확장에는 제주도민이 강제로 징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알뜨르 비행장의 활주로와 격납고, 지하벙커는 아직까지도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은 곳은 비행장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이 상륙할 것을 염두에 두어 일본은 섬 전체를 요새화 했으며, 제주 전역에 동굴을 만들었습니다. 21년 한국동굴안전연구소와 제주도동굴연구소의 합동 조사에 따르면 무려 448개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지금의 제주는 자유로움을 즐기러 떠나는 곳이지만, 한때는 섬 전체가 언제라도 전쟁터가 됐을 수도 있던 것을 생각하면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탑동 아라리오 뮤지엄 / 우리 옛돌박물관 소장
제주 전역에 가볼 만한 곳이 많지만 가장 주목받는 곳은 아마 탑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라리오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재생되고 있는 제주의 구도심이죠. 탑동시네마가 미술관으로 바뀌고, 지역성을 지향하는 일본의 편집숍 디앤디파트먼트를 비롯해 개성있는 숙박시설과 카페, 편집숍 등이 들어서며 매해 조금씩 신중하게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탑동은 '앞바당'이라 부를만큼 가까이 바다가 가까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와 바릇잡이(맨 손으로 해산물을 잡는 활동을 일컫는 제주어)를 하는 곳이었으며 탑동 바다에 넓게 깔린 기공이 없고 매끈한 검은 먹돌은 탑동 해안의 명물로 꼽혔습니다. 그러다 1976년 해일 피해 방지를 위해 탑동 해안을 매립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졌고, 1985년 본격적인 매립이 시작됐습니다. 매립된 탑동의 바다 위에는 대형마트와 쇼핑몰이 들어섰고 이 과정에서 매립면허 발급의 불법성이 드러나며 시민단체와의 충돌도 있었죠. 정경유착이 의심되었고, 조간대를 비롯한 환경파괴와 어민 생태계 위협에 대한 우려도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탑동매립은 강행되었으며,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이후 사수동 하수종말처리장, 한림항 매립공사, 도두동 분뇨처리장 등 서귀포 해녀들의 어장을 둘러싼 주민운동이 잇따라 일어나 정치적인 주체성이 깨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먹돌(제주 현무암) / 사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바다 위에 세워진 도시 탑동은 번화가로 불을 밝혔으나 2000년 초부터 쇠락하여 구도심이 되어 발길이 끊겼습니다만, 도시의 개발과 쇠락,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으며 한국은 재생이라는 보다 성숙한 접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주의 탑동도 다시금 활기를 찾으며, 소위 핫 플레이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탑동은 누군가에겐 아쉬움과 슬픔의 장소이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추억이 쌓인 동네의 번화가로, 재생을 위한 고민과 노력이 결실을 보는 곳으로, 여행의 즐거움과 추억이 남는 곳으로, 그렇게 존재하고 있죠. 그 모두가 탑동의 모습입니다.
최근 제주는 관덕정 광장 복원과 탑동 매립의 8배 규모에 달하는 매립사업인 제주신항만 조성 사업을 논의 중입니다. 역시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고 있죠.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제주의 역사로 남을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만, 변하지 않는 것만이 지키는 것은 아니기에 어떻게 변화하며 공존할지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주의 돌이 제주인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었지만, 결국엔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처럼 말이죠.
제주도 풍경 / 사진 월간한옥
우리가 전통성이나 지역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는 있습니다. 하지만 꼭 모든 것이 변하지 않아야 소중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변화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얻기도 하고 변화 자체로 소중한 일들이 있습니다. 형태가 가치를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치는 들여다보아야 발견할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하죠.
다음 주 뉴스레터도 열심히 준비해 보겠습니다. 🙋♂️
월간한옥 편집부 드림
📢 제주에 대한 고민들, 제 5회 GYCR 개최소식 |
GYCR 2023
GYCR(Global Young Creatives Residency)은 문화를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연결시키는 과정이자 행사입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UNITAR CIFAL 제주/제주국제연수원이 주관하고, UCLG 문화위원회가 후원합니다.
제5회 GYCR은 2023년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에서 개최됩니다. '내려진 뿌리, 자라는 섬'이라는 제목의 레지던시는 전 세계의 젊은 문화예술 전문가들을 제주에 모아 현재와 미래를 위한 예술과 지속가능성의 교차점을 함께 탐구하며, 실질적인 교류와 네트워크 확장을 목표로 하는 아트위크(Art Week) 형태로 진행됩니다. 참가자들은 일주일 동안 아래 세 가지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강연, 토크, 워크숍, 투어, 네트워킹 세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 뿌리 : 제주의 환경과 전통유산
- 나무 줄기: 지속 가능성과 예술
- 가지와 잎: 전 세계적으로 실용적인 연결과 확장
*9월 18일에는 월간한옥 박경철 발행인의 강연과 토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프로그램 정보는 아래 링크를 통해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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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Publisher
박경철 Kyoungcheol Park
뉴스레터 편집장 Editor in Chief
이경근 Gyunggeun Lee
기자 Editor
윤성빈 Sungbin Yoon
송윤하 Yoonha Song
신정민 Jungmin Shin
월간한옥 뉴스레터 55호
제주도 풍경 / 사진 월간한옥
작년,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우리들의 블루스>가 화려한 출연진과 그에 상응하는 열연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과 함께 '제주어', '관당(궨당)문화'를 비롯해 '어멍'이라 불리는 극 중 인물들을 통해 제주 여성의 삶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제주의 문화는 당연히 우리 문화의 한 갈래이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해 새롭게 느껴질 때도 있죠.
많은 관심을 받았던 '제주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소멸 위기 언어'입니다. 단순 지방 사투리가 아닌 언어로서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 보이는 대목입니다. 익숙한 제주어인 'ᄒᆞᆫ저 옵서예' 처럼 '아래아'를 많이 사용하는 등 중세 국어의 흔적이 남아있어 연구 가치가 높은 언어로 여겨지죠. 이에 '제주어박물관'건립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답니다.
제주도는 한 때, 해외여행이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에는 신혼여행지로 많은 이들이 찾았던 곳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이 있는 곳이며, 몇 년 전부터는 한 달 살기 등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의 공간으로,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차원의 워크플레이스로서도 주목받았죠. 최근까지도 삶의 제2막을 꿈꾸며 떠나거나, 그런 계획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덕분에 제주에는 숙박시설을 비롯해 식당, 카페, 편집샵 등 새로운 공간도 많이 생겨났죠.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해외로 가는 여행길이 막히며 제주를 찾는 이가 많아졌습니다.
제주 원도심 / 사진 월간한옥
그만큼 제주도는 가볼 만한, 가봐야 할 새로운 공간이 많이 생겨났죠. 그렇게 생겨난 공간들은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제주의 일부가 되기도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제주의 일부로서 역사, 문화적인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과 고민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떠한 맥락 없이, 한국의 여러 도시가 겪고 있는 것처럼 그저 서울의 복제품이 되어 가는 모습도 일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 돈이면 제주에 갈 바에 해외를 간다.', '한국인에게 외면당한 제주도' 같은 비판적인 말들은 지금 제주가 과도기를 지나며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지만, 또한 제주다움을 잃어간다는 것에 대한 걱정과 우려이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올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내국인 기준으로 16%가량 감소했습니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존재합니다만, 최근 제주도에 대해 투정 가득한 뉴스를 보면 단순히 그것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제주도의 물가나 바가지 같은 문제는 조금만 찾아보더라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그 이유에는 분명 제주의 '변화'도 있을 겁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변화'를 이유로 불화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죠. 시간이라는 개념 아래서 고정된 것은 없기에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제주의 변화와 함께했죠. 그리고 그 변화에는 무언가 사라짐으로써 생겨난 것들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과 사라짐 없이 그저 생겨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새로운 것이 우리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사라지게 했다는 오해가 바탕에 있는 것 아닐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제주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주는 섬이자 우리 나라 최남단 도시입니다. 환경이 다르고 게다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에 고유한 지역 문화가 자리잡았죠. 익히 알려진 것처럼 제주는 화산섬으로 돌이 많습니다. 제주 전역에 점처럼 널린 돌은 농사를 짓기 어렵게 했으며, 해안가에는 배를 정박하기 어렵게 만들었죠. 하지만 결국 섬이라는 환경 안에서 인간과 돌은 공존하기 위해 친해질 수밖에는 없었고, 그 둘이 함께 만든 것들이 곧 제주의 문화가 됐죠.
제주인은 돌을 쌓아 담을 지어 길과 경계를 만들었고, 그것이 모여 고유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돌담은 제주 전역에 걸쳐 혈관처럼 퍼져 있으며, 이를 두고 검은 용이 용틀임을 하는 것 같다고 '흑룡만리'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습니다. '담'은 경계, 분리의 성격을 지닌 구조물입니다. 제주에 많은 돌담은 '돌'이라는 환경적 특성도 드러내지만, 그 안에서 생활했던 제주민들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성향 또한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조형물입니다.
제주의 현무암, 제주돌문화공원 / 사진 월간한옥
제주는 가름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ᄀᆞᆸ가름(分)’습속이라고도 하며, 표준어의 '가로다' 또한 제주 방언인 'ᄀᆞᆯ다'에서 이어진 것이죠. 이런 문화는 돌담뿐만 아니라 가족문화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장남이 결혼해서 분가해도 부모를 모시지 않으며, 한 울타리에 살더라도 경제력을 갖게 되면 거처를 아래채, 위채로 나누어 옮기고 부엌과 장독대 등을 따로 마련하여 먹고 자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과 경영을 두 단위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주거 단위로는 한 가족이지만 경제 단위로는 철저하게 두 가족이 사는 것이죠. 제사 또한 장남이 아니라 형제, 자매간에 공평히 나눠 지냈다고 합니다. 제주의 겹부조 문화 또한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죠.
이런 제주인의 독립성은 '해녀'로 상징되는 제주 여성의 모습에서도 나타납니다. 살림, 육아, 가정, 경제를 모두 책임지는 존재였으니까요. 나아가서는 제주의 효제문자도에서 보이는 3단 구성 또한 육지의 유교에 제주의 토착신앙이 융화되며, 제주의 가름문화가 스며들었다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예술엔 동시대 사조가 반영되는 것을 보면 그럴법한 이야기죠.
제주의 돌담, 제주 김녕해녀마을 / 사진 월간한옥
이렇게 돌담을 쌓는 이들을 제줏말로 돌챙이라 부릅니다. 돌챙이는 원래 담을 쌓는 것부터 돌을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칭하는데요. 돌담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제주에는 돌담 외에도 돌하르방부터 바다에 세워진 원담도 존재합니다.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인공적으로 돌담을 쌓아 막아 두고 밀물 때 따라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돌로 만든 그물인 셈이죠.
지금도 제주에는 직접 사람의 손으로 돌을 고르고 맞춰 담을 쌓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주의 돌빛나예술학교가 있는데요. 제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진행되는 돌담쌓기 챔피언쉽게 출전하거나 아일랜드 돌축제에서 돌하르방을 선보이는 등 한국을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돌담뿐만 아니라 노동요인 돌챙이 노래를 알리는 것부터 감 염색 수업 등 제주 문화를 알리기는 일로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답니다.
물론 이제는 주거 양식이 많이 바뀌어 제주에도 돌담이나 돌챙이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서 제주의 돌 문화는 어떤 식으로든 또 변화를 맞이하며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머무는 공간과 한국적 정체성에 대해
제주 김녕해녀마을 / 사진 월간한옥
이번 여름호 N.36 는 <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숙박문화와 쉼, 여행에서 발견한 한국적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월간한옥은 한국적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매호 관련된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적 정체성을 담은 숙박 시설, 혹은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제주는 우리 문화 중에서도 단연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을 지닌 공간입니다. 탈로제주는 공간이 발붙이고 있는 터에 새겨진 삶의 흔적을 이해하고, 그것다움을 고민하며 잇고 덧붙여 만든 공간입니다.
<여관>은 여러 공간과 함께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전합니다.
'탈로제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한국적 정체성이란 으레 생각하기를 그저 옛것을 잘 지켜낸 구석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다만, 저희는 우리네 오랜 이야기가 스며있는 자리가 더욱 기준에 걸맞다고 여겼습니다. 특히나 ‘공간’에서 그것을 가려야 하므로 더욱이 그렇습니다.
모름지기 공간이란 적극적으로 쓰이고 손때가 타서 곰삭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힘써 지켜지기보다는 부단히 새롭게 고쳐 쓰이는 것이 공간의 자연스러운 참모습인 줄로 압니다. 안에서 살아가는 이녁 삶의 씀씀이에 따라 바뀌어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맞춰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어떻게 켜를 이루었고, 아울러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에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적 정체성을 가리는 기준을 ‘우리네 이야기가 켜를 이룬 구석’이라고 줄여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삼은 기준 아래 꼽아보자면 두 곳이 으뜸으로 떠오릅니다. 집을 두른 ‘돌담’과 ‘출입문’입니다. 조금 더 뚜렷이 하자면 돌담과 출입문의 안팎이라고 갈래를 나누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곳의 돌담은 대부분 한 겹으로 세워 쌓은 홑담입니다. 돌담에서 옛 돌챙이(돌 쌓기 기술자)가 처음 쌓은 구석은 돌의 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킨 돌일수록 돌꽃과 돌이끼가 가득 피어있기 마련입니다. 새로 쌓은 돌은 그것들이 없거나 엉뚱한 곳에 있어 도리어 두드러집니다. 아마도 큰 바람에 무너져 새로 쌓은 것일 터입니다.
성글기 때문에 바람을 흘려보낼 줄 아는 지혜가 담겼다고 전해지는 제주 돌담이라 할지라도 가을마다 찾아오는 탐탁지 않은 손님인 태풍을 매번 이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을이 지나갈 무렵에는 으레 무너진 돌담을 고쳐 쌓아야 합니다. 저절로 돌챙이들이 바빠지는 때입니다. 그러나 다른 집에서 잇따라 잦게 보게 되는 시멘트를 바른 돌담은 옛 지혜가 겸연쩍을 정도로 굳건합니다.
돌챙이들이 오늘날 씨가 마르게 된 여러 까닭 중 하나이겠습니다. 이곳의 돌담은 오늘날에 돌챙이를 쉽게 찾을 수 없는 탓에 퍽 어쭙잖게 쌓인 구석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중에는 제가 스스로 쌓은 것도 있습니다. 돌을 깎아 반듯하게 쌓는 기술자는 찾아보면 더러 있지만 쌓은 모양이 눈맛에 차지 않고, 시멘트를 바르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여겨 매해 가을에는 고생을 사서 할 것을 각오합니다.
그런데도 이 집에는 무너질 걱정 없는 튼튼한 돌담이 하나 있습니다. 남쪽 가장자리 돌담입니다. 한 겹 홑담이 아닌 겹담이고, 높이는 무려 삼 미터 가까이 됩니다. 홀로 겹담이 된 까닭은 예로부터 높은 자리였던 이곳의 땅 모양 탓입니다. 사삼(4.3) 사건 때 진압군이라는 패거리들(말이 공산당 진압군이지 잘못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일삼았습니다.)이 마을 사람을 강제로 부려 쌓은 성(城)담입니다. 진압군이 주변 감시를 위해 썼다고 전해집니다. 이 담은 여전히 남아 집 담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사삼의 아픈 역사가 서리지 않은 땅이 어디 없겠습니까만, 유독 이 동네는 그 슬픔이 큽니다. 오죽하면 동네 이름까지 바꿔야 했습니다. 서글픈 이야기입니다.
출입문 밖은 지난 세월의 흔적이 거칠게 쌓여 여태껏 이 집이 어떻게 삶을 이어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리입니다. 터를 잡고 집을 처음 지을 때 쌓아 올렸을 현무암 바깥벽, 억새 짚과 흙을 섞어 처마 아래 틈을 채운 흔적, 세월이 지나 모래가 섞인 시멘트를 외벽 흙 위로 덧바른 흔적, 새마을 운동이 일어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며 처마 끝을 목재로 덧댄 흔적, 그리고 오늘날 새롭게 얹은 골 강판 지붕과 창호 그리고 계단 판석까지. 한 세기 제주 농가주택 역사가 이 자리에 지층처럼 쌓여있습니다. 그것은 작게는 한 집의 역사 그리고 제주의 역사가 되고, 크게 보아서 우리나라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겠습니다.
현관의 안은 원래 집 밖이었던 툇마루를 덧붙여 늘리어 지은 흔적으로 근대화 과정을 겪은 제주 농가주택에서 흔히 나타나는 독특한 자리입니다. 바람이 거세고 그에 따라 비가 들이치는 제주 기후를 헤아렸을 터이고, 또한 바람이 매서운 겨울에는 집안을 따뜻하게 돕는 지혜가 됐습니다. 이 자리에는 오래전부터 두고 쓰던 나무 툇마루와 늘리어 지으며 새롭게 바닥에 붙인 타일이 세월이 지나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오늘날 새 단장을 하며 창을 바꾸기 위해 반듯하게 바닥을 다듬다가 바닥 면적이 저절로 늘어나 부족해진 타일 자리는 되는대로 새로운 타일로 이어 붙였습니다. 언뜻 잡스러워 보이지만 이 또한 집의 역사를 쪽모이 깁기로 한 조각보처럼 보여 퍽 마음에 드는 구석입니다.
저희가 가꿔가는 숙소는 근대 북유럽 모더니즘 디자인 사상 흐름을 으뜸 주제로 하고 그것의 현대적인 면을 지혜로 삼아 제주의 옛 돌집에 접붙여 꾸렸습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한국적인 구석을 이야기하기에는 어딘가 낯부끄러워 앞서 말씀드린 요소들이 그저 꿰맞추기식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도 이 ‘접붙이기’란 것이 그저 새로운 것을 가져와 흉내 내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옛것과 어떻게 잘 엮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기에 제주다움, 더 나아가 한국다움에 대해서도 분명 깊게 고민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4.3사건의 사망자는 1만 1천여 명에 달하며 현재까지도 유해발굴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돌담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기억이 담긴 조형물로 아픔도 함께 쌓여 있습니다. 가수 조정현의 노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처럼 제주를 찾고, 애정하는 이들에게, 이런 흔적 또한 맛있는 음식이나 멋진 경관과 함께 품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진 탈로제주
탈로제주에는 월간한옥 N.36 <여관>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숙박문화와 쉼에 대한 한국적 정체성을 월간한옥의 글과 사진으로 함께 누려 보세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공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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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 사진 위키피디아
제주 역시 근대 역사를 지나며 앞선 4.3사건을 비롯해 많은 사건이 있었고, 탈로제주의 담처럼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은 조선총독부를 폭파한 것처럼 그 흔적을 없애는 방법으로 상처를 다뤄왔습니다. 여전히 적산가옥이나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시설을 없애고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로 바꾸는 등의 필요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죠. 모두 남겨둘 필요는 없지만, 속도는 조금 더딜지언정 똑바로 마주하며 상처를 치유할 필요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등을 비롯해, 근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그런 변화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크투어리즘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죠. 다크투어리즘은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찾는, 재해와 전쟁이 있었던 장소와 죽음, 슬픔 같은 감정을 대상으로 한 관광을 뜻합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로는 알뜨르 비행장과 진지동굴이 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은 1926년 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알뜨르 지역에 일본이 중일 전쟁을 앞두고 지은 비행장입니다. 여기서 알뜨르는 '아랫마을'이라는 의미가 있는, 송악산과 모슬포 사이의 지역이죠. 중일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알뜨르 비행장은 그 규모를 키워가며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됐는데요. 물론 일본군 병력의 배치도 함께였으며 비행장의 시설관리와 확장에는 제주도민이 강제로 징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알뜨르 비행장의 활주로와 격납고, 지하벙커는 아직까지도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은 곳은 비행장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이 상륙할 것을 염두에 두어 일본은 섬 전체를 요새화 했으며, 제주 전역에 동굴을 만들었습니다. 21년 한국동굴안전연구소와 제주도동굴연구소의 합동 조사에 따르면 무려 448개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지금의 제주는 자유로움을 즐기러 떠나는 곳이지만, 한때는 섬 전체가 언제라도 전쟁터가 됐을 수도 있던 것을 생각하면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탑동 아라리오 뮤지엄 / 우리 옛돌박물관 소장
제주 전역에 가볼 만한 곳이 많지만 가장 주목받는 곳은 아마 탑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라리오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재생되고 있는 제주의 구도심이죠. 탑동시네마가 미술관으로 바뀌고, 지역성을 지향하는 일본의 편집숍 디앤디파트먼트를 비롯해 개성있는 숙박시설과 카페, 편집숍 등이 들어서며 매해 조금씩 신중하게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탑동은 '앞바당'이라 부를만큼 가까이 바다가 가까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와 바릇잡이(맨 손으로 해산물을 잡는 활동을 일컫는 제주어)를 하는 곳이었으며 탑동 바다에 넓게 깔린 기공이 없고 매끈한 검은 먹돌은 탑동 해안의 명물로 꼽혔습니다. 그러다 1976년 해일 피해 방지를 위해 탑동 해안을 매립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졌고, 1985년 본격적인 매립이 시작됐습니다. 매립된 탑동의 바다 위에는 대형마트와 쇼핑몰이 들어섰고 이 과정에서 매립면허 발급의 불법성이 드러나며 시민단체와의 충돌도 있었죠. 정경유착이 의심되었고, 조간대를 비롯한 환경파괴와 어민 생태계 위협에 대한 우려도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탑동매립은 강행되었으며,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이후 사수동 하수종말처리장, 한림항 매립공사, 도두동 분뇨처리장 등 서귀포 해녀들의 어장을 둘러싼 주민운동이 잇따라 일어나 정치적인 주체성이 깨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먹돌(제주 현무암) / 사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바다 위에 세워진 도시 탑동은 번화가로 불을 밝혔으나 2000년 초부터 쇠락하여 구도심이 되어 발길이 끊겼습니다만, 도시의 개발과 쇠락,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으며 한국은 재생이라는 보다 성숙한 접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주의 탑동도 다시금 활기를 찾으며, 소위 핫 플레이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탑동은 누군가에겐 아쉬움과 슬픔의 장소이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추억이 쌓인 동네의 번화가로, 재생을 위한 고민과 노력이 결실을 보는 곳으로, 여행의 즐거움과 추억이 남는 곳으로, 그렇게 존재하고 있죠. 그 모두가 탑동의 모습입니다.
최근 제주는 관덕정 광장 복원과 탑동 매립의 8배 규모에 달하는 매립사업인 제주신항만 조성 사업을 논의 중입니다. 역시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고 있죠.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제주의 역사로 남을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만, 변하지 않는 것만이 지키는 것은 아니기에 어떻게 변화하며 공존할지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주의 돌이 제주인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었지만, 결국엔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처럼 말이죠.
제주도 풍경 / 사진 월간한옥
우리가 전통성이나 지역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는 있습니다. 하지만 꼭 모든 것이 변하지 않아야 소중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변화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얻기도 하고 변화 자체로 소중한 일들이 있습니다. 형태가 가치를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치는 들여다보아야 발견할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하죠.
다음 주 뉴스레터도 열심히 준비해 보겠습니다. 🙋♂️
월간한옥 편집부 드림
GYCR 2023
GYCR(Global Young Creatives Residency)은 문화를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연결시키는 과정이자 행사입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UNITAR CIFAL 제주/제주국제연수원이 주관하고, UCLG 문화위원회가 후원합니다.
제5회 GYCR은 2023년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에서 개최됩니다. '내려진 뿌리, 자라는 섬'이라는 제목의 레지던시는 전 세계의 젊은 문화예술 전문가들을 제주에 모아 현재와 미래를 위한 예술과 지속가능성의 교차점을 함께 탐구하며, 실질적인 교류와 네트워크 확장을 목표로 하는 아트위크(Art Week) 형태로 진행됩니다. 참가자들은 일주일 동안 아래 세 가지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강연, 토크, 워크숍, 투어, 네트워킹 세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 뿌리 : 제주의 환경과 전통유산
- 나무 줄기: 지속 가능성과 예술
- 가지와 잎: 전 세계적으로 실용적인 연결과 확장
*9월 18일에는 월간한옥 박경철 발행인의 강연과 토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프로그램 정보는 아래 링크를 통해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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