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오페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뉴욕 구겐하임까지 이어진 인연

<상점한옥 10 / 청록화>

초록이 날 애워싸고 말한다


글 : 박경철

사진 : 김철성



초록이 날 에워싸고 흙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둘러싸인 콘크리트 숲을 떠나,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따위 이제는 놓아 살라 말한다. <청록집> 박목월이 읊은 ‘산이 날 에워싸고’는 나를 바라보며 넋두리 읊조리듯 아스팔트와 아파트 숲속의 지금을 애닳게 조소한다. 일제의 시대상을 빗대어 목가의 녹림으로 애환하던 당시의 글귀가 지금은 아파트 숲과 아스팔트 그물을 벗어나라는 듯 공명한다.


기차가 멈춰버린 공덕 철길의 공원은 새로운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1년을 불과하게 보낸 시간은 장마가 지난 후 훌쩍 커버린 풀들의 공간처럼, 이제 이곳은 아스팔트 거미줄 길과 아파트 숲으로 울창하게 엉켜져 버렸다.


무어의 숲을 지키는 어둠의 지배자 말레피센트가 인간의 근접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 넝쿨의 엉킴으로 숲을 지키듯 둘러싼 어둠의 공간처럼, 아스팔트와 아파트 그리고 빌딩의 혼재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부여잡고 있는 것 같다.



한길의 아스팔트가 골목의 구옥으로 통한길에 매끄럽지 않은 모퉁이 집 앞으로 이어진다.

마포 나룻터가 번성했을 때 지어졌을 듯한 서까래 펼쳐진 오래된 한옥 그리고 그 골목길 안쪽으로 너르듯 편히 놓인 풀들이 부른다.


추녀의 양두머리 반쪽은 빗물과 세월에 박락돼 반쪽 넘게 썩어 있고, 썩어버린 부분만 가린 양철판의 모습은 추녀를 나무와 양판으로 나눠 만든 아수라 백작의 형상이다.


낡은 창틀은 원형의 모습도 현재의 모습도 아닌 생활의 방편처럼 쓰임새 좋게 고쳐졌고, 집 앞의 풀들은 버드나무 줄기 흔들리듯 널부러진 모습으로 골목과 문 앞을 장식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공간 속의 교차는 초록으로 둘러싸고 흙이나 갈며 살라는 듯한 공명의 환청을 울린다.

구옥의 공간은 매끄럽고 장식적이지 않으며 활동의 흔적이 공생할 수 있도록 편하게 고쳐져 있었고 문칸방의 천정은 기둥만 사라진 사쾌의 흔적이 천정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부분은 천정에 부러진 나무의 흔적이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지 못할 터, 너저분하다 부숴버릴 듯 할텐데 집주인이 그 흔하지 않은 용모에 그대로 남겨둔거라 했다.


시간의 흔적과 가지런한 풀들로 놓인 곳은 식물을 다듬고 꾸미는 곳인데 그 이름이 ‘청록화’라 말했고 주인장은 청록파 시인을 동경하고 시인 박목월을 좋아한다 했다.


어떤 물음도 없이 길과 공간의 교차에 문을 열고 떠올랐던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를 생각하며 도시 속의 동떨어진 공간이라는 것을 느꼈었는데. 아스팔트의 거미줄 길과 아파트 숲속에 오래된 구옥은 풀과 낡음을 안고 혼자 있었다. 시간을 품은 한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