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소주>

시간으로 빚은 전통 술


글 : 이경근, 박경철

사진 : 강진주



한국 3대 명주의 하나로 손꼽는 안동소주는 고려군과 몽골군이 연합으로 일본을 정벌하던 시기 충렬왕 일행이 안동에 와서 머물 때 전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를 기점으로 추정하는 그 제조방식은 안동 지역 집안마다 독특한 재료와 주조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청주와 비슷해 보이는 안동 소주는 곡류를 발효시켜 증류하여 만든 것으로 쌀이나 밀로 누룩을 만든다. 지역의 여러 집에서 소주를 고는 방법이 전승됐으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가양주 제조 금지령이 생겨 전승이 단절되다시피 했다. 안동소주는 안동 사람들에 의하여 배앓이, 소화불량에 효과 있는 약용 술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일제강점기 안동시 남문동에 설립된 안동주조회사가 제비원표 소주를 생산하며 안동의 소주가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소주는 전통가양주 소주나 지금의 민속주 안동소주와 다른 방식으로 제조 됐다. 당시 공장에서 나오는 소주에 대한 세금 징수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가 45도로 정해졌다.


증류식 소주는 막걸리처럼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지역의 몇몇 집안을 중심으로 주조법은 섬세하고 집약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방법 또한 비교적 체계적으로 전승됐다. 그러나 1962년 주세법 개정 등으로 순수 쌀로 만든 순곡주의 생산은 쌀 소비가 많았기 때문에 양곡관리법 아래에서 생산에 제한이 됐다. 그러던 1988년 서울올림픽을 게기로 정부는 사장되던 전통 술을 문화상품으로 부활시키고자 했고 안동소주를 비롯한 전통소주의 생산이 재기됐다.

현재 안동소주를 만드는 방식은 백재서와 조옥화가 만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명인 박재서의 방식은 백미를 사용한 '3단 사입 방식'이 특징이다. 발효 과정에서 재료를 세 번에 나누어 넣는다. 이 과정에서 재료가 되는 밑술을 발효로 올라갈 수 있는 최대 도수인 21도까지 올리고 온도를 유지하도록 발효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안동소주로 명성을 날리던 제비원 소주의 장동섭 명장을 찾아가 대량 증류 방식을 전수 받아 기존의 소줏고리를 사용한 방식으로는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던 것을 생산량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1992년 안동 와룡에서 시작된 안동소주는 현재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아 안동 풍산의 새로운 소주장에서 만들고 있다.

박재서 15대조 선조인 은곡 방진은 유학자로 안동에 정착해 초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는데 안동 소주를 맛본 뒤 그 맛에 반해 직접 소주를 내려 마셨고, 그 주조 방식의 전통이 집안 대대로 전해졌다고 말한다. 박재서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소주 맛은 인근 마을에 명성이 자자했고 학창시절 그 맛이 궁금해 소주 내리는 주조방식을 배우게 됐다고 말한다.


쌀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고 '3단 사입'을 거쳐서 28일간 술을 빚어 청주를 만든 다음 청주를 중탕 방식으로 증류하여 만들어지는 45도, 35도, 22도의 안동소주. 100일 이상의 정제 과정과 숙성을 거치므로 누룩 냄새 불 냄새가 없는 은은한 곡주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