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갑사>

월출산의 기운을 담아 온 도량(道場)


글 : 장헌덕

사진 : 김기용



호남의 명산 월출산 자락에 있는 도갑사는 사적비에 신라 무열왕 때 문수보살의 도장(道場)으로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후 도선국사에 의해 크게 중창(重創)되어 도갑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사찰에는 도선국사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도선의 어머니 최씨(崔氏)가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하여 낳아 숲 속에 버렸는데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그를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먹여 길렀으므로 최씨가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 기르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의 도선국사 출생 설화는 ≪도선국사수미선사비명(한자)≫에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그 후 도갑사는 1456년(세조 2) 신미(信眉)와 수미(守眉)가 증건하여 전부 966칸에 달하는 당우가 들어섰으며, 부속 암자로는 상동암(上東庵)·하동암·남암(南庵)·서부도암(西浮屠庵)·동부도암·미륵암(彌勒庵)·비전암(碑殿庵)·봉선암(鳳仙庵)·대적암(大寂庵)· 상견암(上見庵)·중견암·하견암 등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대부분 소실되었고 해탈문만 남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해탈문은 1957년 해체 수리 당시 마루도리 받침 장여에서 성화 9년에 상당한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 묵서로 이 건물이 1473년 조선 초기에 지어졌음을 확실히 알 수 있어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도갑사 가람의 전체 배치로 볼 때 이 문은 사천왕상을 모셨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문 양쪽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건물의 기단은 지형에 따라 앞쪽은 높고 뒤쪽을 낮게 처리했다. 정면에는 3단의 장대석 계단을 놓아 양측으로 소맷돌을 끼웠는데 가운데에도 같은 모양의 소맷돌을 놓아 오름과 내림을 구분하였다. 소맷돌의 끝은 둥글게 마감되었는데 그 선을 따라 음각으로 묘사한 태극 문양 기법이 예사롭지 않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문 중앙에 기둥을 세워 판문을 달았으며 기둥에는 모두 배흘림 수법이 남아있는 옛날식을 따르고 있다. 건물의 뼈대는 문 중앙에 놓인 기둥의 높이에 맞추어 전후면 처마 기둥이 세워지고, 기둥 위에만 처마를 받치는 주심포계 포작을 짰는데 그 위에 놓인 대들보의 나뭇결과 희미하게 남아있는 단청은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들보 양측에서 종보를 받치는 휘어진 우미량과 그 위에 종도리를 받치는 소슬합장, 문 위의 홍살 등의 구조부재에는 장인의 미적 감각이 잘 표현되어 가구가 노출된 연등천장은 공간적 미학을 더해주고 있다.


건물의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이 있는 겹처마로, 측면의 맞배지붕과 어우러져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건물인 예산 수덕사 대웅전, 조선 조기 건물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건물이다.